고(故) 신동관 전 국회의원 부인 이정림 여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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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신동관 전 국회의원 부인 이정림 여사 별세

1월31일 향년 86세로 편안히 눈감아
이환성 회장 "박정희 대통령도 칭찬"

2021년 04월 02일(금) 14:19
▲이환성 단양관광호텔 회장이 1971년 경희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할 때 사촌누나인 고(故) 이정림 여사가 함께해 축하해주고 있다.
▲고(故) 이정림 여사


고(故) 청남 신동관 전 국회의원의 부인 이정림(1936~2021) 여사가 지난 1월31일 새벽에 갑자기 위급하여 당일 저녁에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故) 이정림 여사의 49재가 지난 3월20일 강남구 봉은사에서 진행되었는데 향우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장남 신주헌(중후산업 대표이사)과 자녀들, 연합철강 권호성 회장, 전 국회의원 권헌성, SK 최철원 회장 등과 친척들, 청남동우회 배문태 회장, 박효준 장군 등이 참석했다. 별세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향우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동면 초음리 출신인 이정림 여사는 서면 도산 출신의 신동관 의원과 결혼했는데 역대 남해 국회의원 부부 중 유일한 남해 출신 부부였다. 이환성 단양관광호텔 회장에 따르면 신동관 의원은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경호과장이었다. 밤 12시 이후 퇴근해서 새벽 4시에 출근했다. 이정림 여사는 이환성 회장의 사촌누나다. 6·25 전쟁 직후인 1954년경 신동관 의원과 결혼하여 요즘과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군인의 아내로 당시 두 자녀를 데리고 전방을 전전한 탓에 병치레를 많이 했다.

어릴 때 농사가 많은 부잣집 딸이어서 집을 찾아온 손님께 식사대접은 기본이었다. 성격이 너무 바른 탓에 비리를 보고는 참지 못했다. 주변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정의롭지 못한 꼴은 보지 못하기에 가차없이 단절하는 성품이다. 10·26으로 박 대통령이 서거하자 신 의원에게 국회의원 그만두라고 수일간을 다투기도 했다.

이환성 회장은 "작은 건 꾸짖지만 막상 큰일에는 못 본 척하신 누님이었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계속 눈물이 난다. 청와대 근무시 경호실장이 나를 데려가려고 한 일이 있었는데, '나를 제일 사랑해준 작은아버지 아들'이라며 실장부인과 다툴 정도로 나를 생각했던 누님이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우리 아버지께서 누님 내외분을 잘 돌봐 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정림 여사는 신동관 의원이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있다가 갑자기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1971년부터 1980년까지 9년여간 고향에서 호남선 기차를 타고 새벽 6시 자택으로 찾아온 고향 분들과 서울향우들을 매일 20~30명씩 차와 식사를 대접했다. 이때 정치인의 아내로 내조를 잘하는 여사로 소문이 자자했다. 당시 이환성 회장은 집사로서 모든 뒷바라지를 하였다고 한다.

배문태 청남동우회 회장은 "고(故) 이정림 여사는 미모가 뛰어나고 키가 크며 성격이 쾌활하면서도 직선적이며 부당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이 강하고 내조적인 분이셨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런 신동관 경호차장의 부인을 청와대 참모들 앞에서 칭찬했다"고 회고했다.

이정림 여사는 신동관 의원이 8대, 9대, 10대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 부녀회원들과 유대가 강했으며 고향의 민원을 많이 해결해줬다. 지구당 당직자들이 서울 중앙연수원 교육차 상경하면 서울 고궁 관광지 답사와 유명 음식점, 백화점 등으로 안내하여 구경시키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자상하신 분이셨다.

또 이정림 여사는 남해 금산에 설치되어있는 큰 종을 제작하여 헬리콥터로 운반해 설치하였고, 남해의 화방사, 망운사는 물론 설악산과 속리산의 절 등 전국 사찰에도 소리없이 시주를 많이 했다고 한다. 이환성 회장은 "이정림 누님은 불도로서 불교계에 이름이 크게 알려진 분이셨다"고 말했다.


▷고(故) 이정림 여사의 생전 업적…◁

고(故) 이정림 여사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첫째는 남편인 신동관 국회의원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둘째는 남편이 정치인·공직자인 관계로 국가의 인정된 발전을 축원하며, 설악산 봉정, 오대산 중대 보궁, 통도사 적멸보궁 등과 관음성지인 동해 낙산사 홍연암, 서해 강화 보문사, 남해금산 보리암 등 관세음보살 기도를 철따라 하고, 고성 상리 문수암 문수보살 기도와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등 전국 사찰을 참배하며 지극 정성으로 기도정진하며 많은 불사에 동참하였다.

남해 출신인 관계로 신동관 의원의 부친은 남해 망운산 화방사 법당 등 여러 가지 불사를 한 인연으로 본래 조상 대대로 화방사의 근동에 살아서 불심이 돈독했지만 조상의 신앙정신을 계승한 듯 두 내외가 남해 발전에도 기여하였지만 불사도 많이 하였다. 화재로 전소한 화방사 대웅전을 복원하고, 망운암(덕산 주지스님) 법당과 삼성각을 복원하고,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금산 보리암 범종불사를 단독으로 하였다. 당시 보리암 주지 양소암(남면 출신) 스님이 통도사 극락암 경봉 큰스님을 찾아뵙고 붓글씨를 써 달라고 했는데 큰 스님께서 어디 쓰려고 하느냐? 물으니 보리암에 범종불사를 하려고 합니다 하는 말을 하다가 마침 이정림 불자를 힐끗 보시며 "니가 종 시주해라"고 하시는 한마디에 "예"하고 즉답으로 보리암 범종불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신동관 의원이 주선한 평택 미8군기지의 쌍발 헬기를 이용하여 금산 보리암 범종이 운반되고 종각이 완성되어 당시 보리암 주지 양소암 스님의 원력과 이정림 여사의 정성이 담겨 오늘도 남해 금산을 울리며 어두운 생명의 마음을 일깨우고 있다. 또한 법산스님과 어릴적 만나 계속 불사의 연을 이어왔다.

이환성 단양관광호텔 회장은 "2년 전에 신동관 의원이 용인 삼성 노블카운티에 계시다가 평온하게 영면하신 것과 누님도 당일 저녁까지 잘 잡숫고 편안하게 돌아가신 것이 평소 불사를 많이 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인연을 맺었던 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지난 49재 식사는 누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제가 대접했다"고 말했다.

신동관 의원이 청와대에 근무하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 남해와 남해인들이 신동관 의원과 이정림 여사의 큰 공덕을 입은 것은 지금도 곳곳에서 회자되고 있다. 고인이 된 신동관 의원과 이정림 여사는 남해인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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