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식 jys23@nhmirae.com
발행연월일 : 2021년 09월 18일(토)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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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올 수 없고, 마찬가지로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나올 리 만무하다는 얘기다. 앞으로 어떠한 세상의 일이 닥쳐올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더 보태거나 뺄지의 여지가 없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세상에 아무런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은 별로 없을 거 같다. 오늘날 전 세계 관심사가 되고 있는 자연과 환경 문제가 이와는 별 다르지 않다. 바꾸어 말하자면 자업자득이란 말과도 같다.
요즘 들어 부쩍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과 여러 관점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논의를 갖가지 주장으로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필자의 경우도 이런 논의들을 보면서 '콩 심은 데 콩 난다'란 말과 같은 맥락에서 그 뜻을 짚어 볼 수 있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을 떠올린다.
이 말은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세상에 공짜로 주어지는 일은 없다는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을 테다.
그러면 이 말에 기준을 두고 환경문제의 핵심을 한번 짚어보자.
환경이란 말은 너무나 광범위한 영역에 적용되므로 그 문제의 중심에 접근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당장 떠오르는 말은 자연환경을 들 수 있다.
오염된 강과 산, 그리고 공기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직접적인 문제가 되고 있을뿐더러 모든 환경문제 논의의 중심에는 오염된 자연이 함께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좀 더 깊이 있게 생각을 하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우리는 알 수 있다. '자연환경의 오염이 문제다'라는 문장에는 숨겨진 주어가 있다. 자연환경의 오염은 자연이 초래한 것이 아니라 공기와 물 등 자연환경을 오염시킨 주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자연환경의 오염은 바로 사람이 주체이다. 인간은 자연과 상대적인 위치에 서서 그들만의 환경을 구축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면 오늘날 환경오염의 문제는 어떤 것과 연관되어 있을까.
그동안 우리는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착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의 탐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연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정신적 완성을 위한 보금자리이므로 그것을 잘 가꾸고 보살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잠시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와 같이 환경문제의 핵심이 어느 정도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얘기다.
자연환경의 오염은 인간의 오염된 마음에서 연유한 것이므로 마음이 정화된다면 자연환경도 더 밝고 선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에 자연환경의 오염 문제가 아니라 환경오염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 사람이기에 사람의 마음이 바뀌면 세상도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상대적인 위치에 서서 그들만의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존재이다.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의 '붓다'가 이런 문제를 마주했다면 과연 어떤 말을 했을까. 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환경문제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지금 와서 직접 물어볼 수 없으니 답답한 마음뿐이다.
붓다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그러한 행위를 신체적 행위, 언어적 행위, 심적 행위 등으로 구분하였다고 한다. 신체적 행위와 언어적 행위는 외적 행위이고, 심적 행위는 내적 행위이다. 붓다가 마음의 문제로 지적한 것은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이었다. 마음이 탐욕으로 가득하면 모든 것은 탐욕의 대상이 되어 탐욕으로 물든 세상이 되고,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면 캄캄한 무지의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즉,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마음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도 서로 어긋남이 없이 평화롭다는 것이다. 만나면 즐거워하고 착하고 고운 말만 주고 받으니 뜻이 다르거나 어긋나는 말이 없어 울단월(鬱單越) 세계에서 사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처럼 자연환경의 오염 그 자체가 문제지만 내 마음에 얼룩은 없는 것인지 한번 되짚어 보면 어떨까 싶다. 그리하여 마음이 맑아지면 세상의 오염도 정화될 것이요, 이것이 과학과 경제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에서 깨어 있는 맑고 깨끗한 마음 정신이 요구되는 시대가 바로 오늘날이 아닌가 싶다.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면 세상도 함께 밝게 보일 것이고, 바로 내 앞에 보이는 자연과 환경도 아름다운 세상처럼 둥실둥실한 둥근 보름달처럼 훤한 세상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올 수 없고, 마찬가지로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나올 리 만무하다는 얘기다. 앞으로 어떠한 세상의 일이 닥쳐올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더 보태거나 뺄지의 여지가 없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세상에 아무런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은 별로 없을 거 같다. 오늘날 전 세계 관심사가 되고 있는 자연과 환경 문제가 이와는 별 다르지 않다. 바꾸어 말하자면 자업자득이란 말과도 같다.
요즘 들어 부쩍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과 여러 관점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논의를 갖가지 주장으로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필자의 경우도 이런 논의들을 보면서 '콩 심은 데 콩 난다'란 말과 같은 맥락에서 그 뜻을 짚어 볼 수 있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을 떠올린다.
이 말은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세상에 공짜로 주어지는 일은 없다는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을 테다.
그러면 이 말에 기준을 두고 환경문제의 핵심을 한번 짚어보자.
환경이란 말은 너무나 광범위한 영역에 적용되므로 그 문제의 중심에 접근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당장 떠오르는 말은 자연환경을 들 수 있다.
오염된 강과 산, 그리고 공기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직접적인 문제가 되고 있을뿐더러 모든 환경문제 논의의 중심에는 오염된 자연이 함께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좀 더 깊이 있게 생각을 하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우리는 알 수 있다. '자연환경의 오염이 문제다'라는 문장에는 숨겨진 주어가 있다. 자연환경의 오염은 자연이 초래한 것이 아니라 공기와 물 등 자연환경을 오염시킨 주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자연환경의 오염은 바로 사람이 주체이다. 인간은 자연과 상대적인 위치에 서서 그들만의 환경을 구축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면 오늘날 환경오염의 문제는 어떤 것과 연관되어 있을까.
그동안 우리는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착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의 탐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연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정신적 완성을 위한 보금자리이므로 그것을 잘 가꾸고 보살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잠시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와 같이 환경문제의 핵심이 어느 정도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얘기다.
자연환경의 오염은 인간의 오염된 마음에서 연유한 것이므로 마음이 정화된다면 자연환경도 더 밝고 선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에 자연환경의 오염 문제가 아니라 환경오염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 사람이기에 사람의 마음이 바뀌면 세상도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상대적인 위치에 서서 그들만의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존재이다.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의 '붓다'가 이런 문제를 마주했다면 과연 어떤 말을 했을까. 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환경문제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지금 와서 직접 물어볼 수 없으니 답답한 마음뿐이다.
붓다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그러한 행위를 신체적 행위, 언어적 행위, 심적 행위 등으로 구분하였다고 한다. 신체적 행위와 언어적 행위는 외적 행위이고, 심적 행위는 내적 행위이다. 붓다가 마음의 문제로 지적한 것은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이었다. 마음이 탐욕으로 가득하면 모든 것은 탐욕의 대상이 되어 탐욕으로 물든 세상이 되고,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면 캄캄한 무지의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즉,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마음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도 서로 어긋남이 없이 평화롭다는 것이다. 만나면 즐거워하고 착하고 고운 말만 주고 받으니 뜻이 다르거나 어긋나는 말이 없어 울단월(鬱單越) 세계에서 사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처럼 자연환경의 오염 그 자체가 문제지만 내 마음에 얼룩은 없는 것인지 한번 되짚어 보면 어떨까 싶다. 그리하여 마음이 맑아지면 세상의 오염도 정화될 것이요, 이것이 과학과 경제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에서 깨어 있는 맑고 깨끗한 마음 정신이 요구되는 시대가 바로 오늘날이 아닌가 싶다.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면 세상도 함께 밝게 보일 것이고, 바로 내 앞에 보이는 자연과 환경도 아름다운 세상처럼 둥실둥실한 둥근 보름달처럼 훤한 세상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