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인◀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와 문인화 모두 입선한 남천 양병량 선생

"마치 음악 리듬처럼, 붓의 속도와 강약은
작가 내면 감정과 삶의 굴곡을 그대로 표현한다"
서예가 인성 교육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역설
"지역 서예 문화 일구고 미래세대 전달하고 싶다"

이태인, 홍성진 기자
2025년 08월 22일(금) 09:34
남해군 설천면 왕지마을, 바다와 산이 맞닿은 고즈넉한 마을에 묵향을 품은 한 예술가가 칩거하고 있다. 호 '남천(南川)'으로 불리는 양병량 선생. 그의 호는 남해군 설천면(雪川面)에 사는 인연을 기리며 서예 스승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붓 하나에 인생의 전부를 걸었던 한 남해인의 깊은 삶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편집자주>





▲ 서예와 우연한 만남, 운명적인 이끌림

양 선생의 붓과의 인연은 19세,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학을 앞두고 시작됐다.
당시 부산에서 친척 집에 머물며 불안한 진로를 고민하던 그에게 어른들은 붓글씨를 권했다.
호기심에 시작한 서예는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우연히 잡은 붓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렸다'는 그의 고백처럼, 붓은 그에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나침반이자 치유의 도구가 되었다.
정치학을 전공했음에도 그는 학창 시절 대부분을 서예와 붓글씨에 헌신했다.
다른 조직 생활은 해본 적 없이 오직 붓과 먹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예술의 길을 걸어왔다.
남들이 취업과 성공을 위해 질주할 때,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내면의 깊이를 다졌다.
부친의 든든한 지원 아래, 그는 경제적인 성공보다 예술적 완성을 추구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는 "아버지가 '왕지 땅을 다 팔아 공부시켜도 충분하다'고 하셨다"며 가족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양 선생의 이 독특한 삶의 궤적은 현대 사회의 성공 공식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일평생 조직에 소속된 적 없이 오직 예술가로서의 삶을 고집했다.
부산에서 자랐지만, 그의 출생지는 남해 설천면 왕지였고, 그 뿌리를 잊지 않았다.
한때는 부산에서 서예 명성을 쌓았고,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서예와 문인화 두 분야 모두 입선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화려한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고향인 남해로 돌아와 조용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귀향을 넘어, 물질적 풍요보다는 내면의 충만함을 추구하는 그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고난을 이겨낸 붓의 힘, 삶의 여백을 채우다


양 선생의 예술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수없이 도전하고 좌절을 거듭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다.
서예에서 문인화로 영역을 넓히며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았다.
특히 문인화는 서예와 달리 처음 발을 들인 분야였지만, 타고난 필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3회 연속 미술대전에 입선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예술적 성취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꺼렸던 그는, 스승과의 이별 이후 대외적인 활동을 접고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게 된다.
양 선생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내 글씨, 내 그림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겸손을 넘어선 그의 깊은 예술 철학을 보여준다.
그는 왕희지 등 대가들의 글씨를 수없이 임서(臨書)하며 선인들의 흔적을 오롯이 자신의 몸에 새겨왔다. '마치 거위가 목을 360도로 돌리듯 손목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붓은 단지 손으로 쓰는 도구가 아닌 온몸의 기운을 담아내는 매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양 선생이 말하는 '선의 예술'은 단순한 기술의 영역을 넘어선다.
붓 한 번에 모든 것을 담아내는 동양 예술의 특성은, 덧칠이 가능한 서양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붓이 종이에 닿는 순간, 작가의 모든 인성과 철학이 선에 담기기 때문이다.
먹의 농담(濃淡) 역시 마찬가지다. 진하고 무거운 먹색은 깊은 사유와 고통의 흔적을, 연하고 흐린 먹색은 삶의 여백과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그는 "마치 음악의 리듬처럼, 붓의 속도와 강약은 작가 내면의 감정과 삶의 굴곡을 그대로 표현한다"고 말한다.
서양화가 '보는' 예술이라면, 서예는 '느끼는' 예술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술은 결국 수행의 길
 

 단순히 기술만으로는 선의 깊이를 담아낼 수 없다.
 양 선생은 선 하나를 긋는 행위 자체가 곧 예술의 본질이자 수행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양 선생은 예술을 '수행의 길'이라고 정의한다.
 '혼자서 자기를 다스려야 하는 수행은 스님보다 더 어렵다'는 그의 말은 오랜 세월 붓과 함께해온 그의 고독하고도 치열한 삶을 짐작하게 한다.
 자신의 인격과 마음을 닦는 과정이 곧 예술이라는 그의 철학은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는 '글에서는 글의 향기가, 글씨에서는 책의 기운이 난다'는 뜻으로, 예술적 재능 이전에 깊은 사유와 인격적 수양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인성과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의 눈에 비친 예술계의 현실은 아쉽기만 하다.
 그는 "예술인들 중에는 오직 자기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며 "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이라고 꼬집었다.
 예술은 결국 자신의 인격을 깎아내고 다듬어가는 외로운 길이며, 그 길 위에서 탄생한 작품에만 진정한 가치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 아호를 아는 사람이 적은 시대의 아쉬움
 

 양 선생은 자신을 '아호(雅號)'로 부르는 사람이 적어진 시대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아무나 부르는 것이 아니다"라며, 예로부터 인격을 갖춘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아호를 지어주어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넘어, 상대방에 대한 깊은 존경과 예의를 표하는 우리 전통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똑똑해도 아호가 없으면 여전히 그저 이름으로 불릴 뿐"이라며, 이는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예술적 소양의 부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아호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읽고, 깊이 있는 삶을 살며, 인격적인 덕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서예의 교훈


 양 선생은 붓을 잡을 줄 모르는 다음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치면서도, 서예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중요한 교훈들을 강조했다.
 그는 서예를 통해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컴퓨터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붓은 낯선 도구일 수 있지만, 한 번 그은 획을 되돌릴 수 없다는 서예의 속성은 그들에게 신중함과 책임감을 가르쳐 준다.
 또한, 서예는 '느림의 미학'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게 한다. 그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는 삼박자가 어우러져야 진정한 문인화가 완성된다"며, 이는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대 사회의 빠른 속도와는 대비된다고 말한다.
 서예는 아이들에게 한 호흡 한 호흡에 집중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의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인성과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없다"며, 서예가 인성 교육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역설했다.




▲ 문화 불모지, 그러나 희망은 있다


 남해에 머물며 예술 활동을 이어가는 그는 남해의 문화적 토양이 아직 척박함을 아쉬워하면서도, '붓을 들 줄 모르는 사람이 꽉 찼다'며 다음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는 "남해 안에서 국전에 입선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 남해를 떠난 사람들뿐"이라며, 지역 예술에 대한 무관심을 꼬집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이런 봉사를 통해 남해에 서예 문화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실제로 양 선생은 남해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며 '묵대(墨臺)'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든 활동을 접고 작품 창작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 남해에 오면 다른 예술인들은 많지만 서예인은 없다"며 "지역의 서예 문화를 일구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밝혔다.
 양 선생은 서예 문화의 부흥을 위해 지역 사회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학교 교육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수학이나 영어 점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유롭게 먹과 물감을 가지고 놀며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바둑을 잘 두는 아이를 찾아내듯, 붓에 재능이 있는 아이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은 화려한 명성보다 더 값진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보여준다.
 남해의 자연을 닮아 고요하고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그의 묵향은,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이정표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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