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기 선생의 교육이야기] 율곡 이이, 교육으로 국가를 생각하다

·율곡 이이는 성리학 이론을 현실 정치와 교육에 결합함으로써,
인간의 성숙과 공동체의 안정을 동시에 지향한 실천적 교육자이자 경세 사상가였다.
·율곡의 '10만 양병설'과 교육 사상은 단순한 제도 개혁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기르고 그 인재로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려는 장기적 국가 비전이었다.

발행연월일 : 2026년 02월 06일(금) 12:32
조선 중기,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는 흔히 '천재'로 불리지만, 그의 삶은 단순한 명석함을 넘어 치열한 사유와 실천, 교육으로 인간 성숙의 가능성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로 가득하다. 경세(經世)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며 실천적 유학을 지향했던 그의 여정은, 오늘날 교육과 정치,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율곡은 조광조의 개혁이 좌절된 직후의 혼란한 시대에 태어났다.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564년에는 문과 초시, 복시, 전시 모두 장원해 이름을 떨쳤다. 후대에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 사료로 확인되는 장원은 일부에 불과하며, 이는 그의 학문적 역량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표현이다. 이후 그는 경연관, 이조참판, 병조판서 등 주요 관직을 거치며 학문과 정치, 교육 전반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이상주의적 개혁 시도는 현실 정치의 장벽에 자주 부딪혔고,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후반기 활동에서 주목할 것은 '10만 양병설(養兵說)'이다. 당시 많은 신료가 이를 과도한 우려로 간주했지만, 율곡은 국제 정세와 내부의 취약성을 꿰뚫어 보고 국방 강화와 인재 양성을 동시에 제안했다. 그의 사후 8년 만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자, 이 주장은 선견지명으로 재조명되었다. 그러나 이는 직관이나 예언이 아니라, 철저한 현실 분석의 결과였다. 율곡에게 양병은 단순한 병력 확충이 아니라, 성리학적 국정 운영의 근간으로서 인재 양성에 대한 구체적 구상이었다. 그는 유능한 인재는 교육을 통해 길러져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의 교육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신사임당은 시대적 한계를 넘어, 예술과 교육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인물이었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어린 율곡이 금강산(金剛山)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려 했을 때, 신사임당은 이를 적극적으로 막기보다 배움은 세상과 유리(遊離)되어서는 완성될 수 없다는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이는 교육이 인간을 세우고, 그 인간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공공성과 책임 의식'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율곡은 성리학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론을 현실 정치와 교육에 적용하려 한 실천적 사상가였다. 주자(朱子)의 이기론(理氣論)을 바탕으로 하되, 이를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접목하며 실천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경세학(經世學)은 단순한 사유에 머물지 않고, 백성을 위한 정책과 인재 육성이라는 구체적 방안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는 도덕성과 행정 능력을 겸비한 인물을 양성해야 한다고 보았고, 학문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며, 바른 이치에 입각한 정치는 민생 안정과 국력 향상의 토대가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개혁안은 붕당 정치의 벽에 자주 가로막혔고, 원칙을 중시하는 자세는 오히려 정치적 고립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교육의 가치를 끝까지 붙들었다. 선조(宣祖)를 위해 집필한 『성학집요(聖學輯要)』는 군주가 도덕적 수양을 통해 신하와 백성을 이끄는 통치 이상을 제시한 저술이다. 그는 국가 경영의 핵심은 군주의 자기 수양과 정직한 통치라고 보았다.



이러한 율곡의 교육 철학은 오늘날에도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교육을 시험이나 입시 중심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공교육 정상화와 창의 인재 육성을 말하지만, 정작 '인간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율곡은 분명히 말한다. "공부는 사람됨을 위한 것이며, 그 인간이 공동체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미래 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미래를 열 수는 없다. 인간을 이해하고, 공동체의 책임을 자각하며, 위기에 앞서 대응할 수 있는 성찰적 인재가 요구되는 시대다. 이는 율곡이 제시한 인재상과 다르지 않다. 그의 삶은 단지 성리학자의 궤적이 아니다. 그는 유교적 가치를 교육과 정치에 연결하고자 했으며, 그 속에서 이상과 좌절, 실천과 반성을 끊임없이 넘나들었다. 그의 사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것은 인간, 교육, 국가를 하나의 정직한 질문으로 묶고자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지금, 우리 교육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물음 앞에서 율곡 이이의 목소리는 500년을 넘어, 오늘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그가 말한 '10만 인재'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교육 철학과 국가 비전을 상징한다.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되새겨야 할 과제다. 지금의 교육은 세계화, 디지털화, 다양성의 물결 속에서 방향을 다시 정립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율곡의 '경세치용적(經世致用的)' 사유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교육은 단순한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에 이바지하는 인재를 기르는 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 율곡이 말했듯, 배움이란 결국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기술 중심의 교육을 넘어, 공존과 협력, 책임의 가치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율곡은 단지 사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교육을 통해 개인을 변화시키고, 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함께 고민했던 교육자였다. 그의 사상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공동체의 발전을 지향하는 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



율곡 이이의 교육적 유산은 단지 성리학의 가치와 원칙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교육 철학은 사람됨과 공공성이라는 근본적 가치에 중심을 두고 형성되었으며, 오늘날의 교육 담론 역시 사람됨과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본질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경쟁 중심의 교육을 넘어, 모두를 위한 교육,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교육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그 해답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율곡 이이의 삶과 사상 속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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