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이태인, 홍성진 기자
발행연월일 : 2026년 04월 10일(금)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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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FM공동체라디오와 남해미래신문은 지역 공동체와의 진솔한 소통을 위해 특집방송 [남해인 초대석]을 진행했다. 이번 [남해인 초대석]은 후보자의 차가운 공약이나 날카로운 정책 대결의 장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사가 지닌 깊은 무늬와 그 내면에 숨겨진 인간적인 온기를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공인으로서의 외면적 모습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한 시대, 한 세대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자 함이다. 공통 주제인 남해에 대한 기억과 남해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역사회를 훈훈하게 만들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심어주길 기대한다. 이번 기획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의 역할을 넘어,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는 소중한 소통의 시간이길 바랄 뿐이다. <편집자 주>
저녁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시각, '남해미래신문'과 '남해FM'이 손을 맞잡고 기획한 특집 방송 [남해인 초대석]에 다섯 번째 주인공인 문준홍 예비후보가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군민들게 들려주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았다.
진행자 김보민 남해FM 방송자원활동가의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시작된 대화는 남해의 시장통에서 시작해 굴곡진 인생의 파도를 넘어 다시 고향의 흙으로 돌아온 한 남자의 정직하고도 치열한 서사시를 그려냈다. 이번 기획은 후보자의 정책적 역량 이전에, 그를 형성한 삶의 궤적을 통해 그가 꿈꾸는 남해의 원형을 찾아보는 데 목적이 있다.
[고향의 기억] 시장통의 활력과 빵집의 추억이 키운 '남해의 원동력'
1964년 용띠 해에 태어난 문준홍 후보는 자신을 "남해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남해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정통 남해인"이라고 소개했다.
남해초 64회, 남해중 29회라는 이력은 그가 이 땅에 내린 깊은 뿌리를 증명한다.
그가 태어난 곳은 현재 남해FM 연주소에서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남해읍 시장통이었다.
"1965년 당시 우리 남해 인구가 13만 8천 명에 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나요? 그 시절의 시장통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는 활기 그 자체였습니다.
골목마다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했고, 그 왁자지껄한 소음이 제게는 가장 아름다운 자장가였습니다."그에게 남해전통시장은 거대한 인생의 배움터였다.
다양한 이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훗날 그가 '사람 중심의 정책'을 고민하게 된 정서적 토양이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그에게 가장 소중했던 아지트는 지금은 전설처럼 사라진 '고려당'이라는 빵집이었다.
"당시에는 빵집에 출입하다 걸리면 정학을 당할 수도 있었던 엄격한 시절이었죠. 친구들과 몰래 숨어 들어가 빵 향기에 취하던 그 두근거림, 학교 선생님이나 선배들의 눈을 피해 뒷문으로 다니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 소소한 반항과 우정이 저를 성장시켰습니다."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넓은 세상을 경험했지만, 그의 마음은 늘 남해의 갯내음을 향해 있었다. 결국 2007년, 그는 모든 기득권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벌써 귀향 22년 차. 그는 고향을 "삶의 모든 에너지가 시작되는 원천이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머물고 싶은 요람"이라 불렀다. 고향을 떠났던 경험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그 '기운 차게 만드는 고향의 기운'이 그를 다시 이곳으로 이끈 필연적인 인력이었다.
[인생의 파도] '반 컵의 물'에서 배운 긍정과 2023년의 시련
누구에게나 삶의 십자가는 있다. 문준홍 후보 역시 인생의 매서운 칼바람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인생의 가장 춥고 배고픈 시기를 묻는 질문에 "사실 지금도 춥고 배고프다, 때로는 군중 속에서 깊은 고독을 느낀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정치인으로서 겪는 오해와 외로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 지혜를 초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께 배웠다고 소개했다.
"선생님이 컵을 하나 가져다 놓고 물으셨죠. '얘들아, 이 컵에 물이 반이 있을 때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요. 저는 그때 이후로 늘 생각합니다. '아직 반 잔이나 남아 있구나, 이 컵은 곧 채워질 것이다'라고요. 비어 있는 반을 한탄하기보다, 채워진 반을 보며 나머지 반을 채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제 삶의 방식입니다."이러한 긍정의 철학은 2023년, 그에게 닥친 큰 시련 앞에서 빛을 발했다.
수년간 정성을 다해 가꿔온 소중한 공간에 화재가 발생해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하필 가뭄이 극심하던 시기라 전기와 물마저 끊겼다. 검게 타버린 나무들을 살리기 위해 그는 매일 페트병 100개에 물을 담아 날랐다고 한다.
"그 막막한 순간, 제가 선택한 것은 절망이 아니라 책임이었습니다. 1년 동안 묵묵히 정원을 다시 돌보며 깨달았습니다. 시련은 결국 채워나갈 또 다른 따뜻함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요. 타버린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돋아날 때, 저는 인생의 또 다른 페이지를 넘길 용기를 얻었습니다."그의 곁에서 묵묵히 물병을 함께 날라준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기에, 그는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다시금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이는 개인의 극복을 넘어, 공동체가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적 경험이기도 했다.
[가치와 인연] 스승과 후배가 전해준 위로의 무게
문준홍의 인생 지표를 만든 것은 거창한 철학 이론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람의 말 한마디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 은사인 故 하성관 선생님을 가장 그리운 멘토로 기억한다.
과거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고 실의에 빠졌던 제자를 향해, 선생님은 자신의 아픔을 섞어 위로를 건넸다.
"선생님이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죠. '준홍아, 내가 이번에 마을 이장 선거에서 떨어져 보니까 네 심정을 알겠더라.'스승으로서의 체면을 내려놓고 제자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건네신 그 말씀 속에 담긴 진정한 공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경험으로 안아주는 법을 그때 배웠습니다."설 연휴를 앞두고 찾아뵙기로 약속했지만, 갑작스러운 부고로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 그에게는 평생의 짐이자 죄송함으로 남아 있다.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은 후배 최갑종 씨다. 10여 년 전, 정치적 좌절감에 빠져있던 그에게 후배는 뼈아픈 일침을 가했다."형님은 사람을 정말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사람들이 내린 결과가 비록 형님의 기대와 다르더라도, 형님이 사랑하는 그분들이 내린 결정이니 당연히 수용하고 행복해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이 말은 문준홍에게 개인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준 인생의 소중한 등불이 되었다. 그는 이때부터 결과보다 과정의 정직함에 더 무게를 두게 되었다고.
[성찰과 소신] '밝고 내성적인' 문준홍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용기
대중의 시선을 받는 정치인의 삶을 살고 있지만, 문 후보는 스스로를 "사실은 아주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소개했다. 혼자 있는 시간, 그는 여느 평범한 이웃처럼 뒹굴거리며 유튜브 쇼츠를 보거나, 머리를 식히기 위해 영화 '007 카지노 로열' 같은 명작을 자막 없이 원어로 들으며 몰입한다고 한다.
"007 영화를 원어로 듣는 것은 제게 일종의 집중력 훈련이자 휴식입니다. 복잡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언어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이죠. 그리고 당구 실력은 남해에서 상위 1%라 자부합니다. 친구들과 당구 큐대를 잡을 때면 어린 시절 시장통의 그 장난기 어린 유쾌함이 되살아납니다."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가 하루도 거르지 않는 중요한 의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거울 속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와 격려다.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말합니다. '준홍아, 너 정말 잘하고 있다. 참 잘 살았다. 너의 선택은 옳았다.'라고요. 남이 해주지 않는 칭찬을 스스로에게 먼저 건넵니다."그는 군민들에게도 이 비결을 제안한다.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에게 웃으며 "오늘도 잘해보자"라고 한마디 건네는 것만으로도 표정이 바뀌고, 그 바뀐 표정이 결국 인생의 온도를 높일수 있다는 믿음이다.
[미래와 유산] '당당하고 용기 있는'남해인으로 기억되기 위하여
문준홍 후보가 군민들의 가슴 속에 남기고 싶은 단 하나의 형용사는 바로 '당당하고 용기 있는'이다. 그가 말하는 당당함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정직함이다. 또한 그 당당함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할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온다.
"남해처럼 혈연과 지연이 촘촘하게 얽힌 좁은 사회에서는 친분 때문에 해야 할 말을 못하거나, 그릇된 것을 보고도 눈 감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우리 남해의 공동체적 이익을 위해 필요한 말을 당당하게 내뱉고 실천하는 용기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실천이 담보되지 않는 말은 그저 공허한 소음일 뿐이며, 군민들에게 실망을 주는 일이니까요."그가 꿈꾸는 남해는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한' 곳이다. '남해 미래 정책 연구소'를 운영하며 밤낮으로 고민해 온 정책들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회복하고, 소외된 이 없이 모두가 어우러지는 데 목적이 있다고." 그는 "우리 모두는 문준홍의 또 다른 모습"이라며,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너 참 잘하고 있다'고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공동체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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