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늘 고단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

만학도에서 교수… 정광자 교수의 '세컨드 스테이지'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사회적경제복지학과 교수

서정준 군향우회 홍보분과위원장
발행연월일 : 2026년 05월 22일(금) 14:06
정광자 교수
·1953년 삼동면 물건리 은점마을 출생 ·삼동초·남수중 졸업 ·부산 예원고, 부산외국어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신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 석·박사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사회적경제복지학과 교수
1953년 삼동면 물건리 은점마을에서 태어나 마산의 방직공장 노동자로 청춘을 보냈던 한 여성이 일흔을 넘긴 나이에 대학 교수로 강단에 섰다.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사회적경제복지학과 정광자 교수(이하 정 교수)의 이야기다.
그녀의 삶은 '늦었다'는 말이 얼마나 허약한 기준인지를 보여준다.
끊어졌던 배움의 다리를 다시 잇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지나 결국 강단에 선 그녀의 삶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편집자 주>




■ 배움은 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정 교수는 집안 형편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생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산의 방직공장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배움에 대한 결핍이 그림자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내 삶에서 끊어져 버린 다리처럼 느껴졌고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생의 전환점은 막내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찾아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녀는 용기를 내 다시 공부를 시작해 부산예원고와 부산외국어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0년 동안 청소년 대안학교에서 교육·상담 봉사 활동을 이어가던 중 인연이 닿아 신라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시간을 쪼개며 버텨낸 배움의 길


만학도로서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분명했다. 시간과 역할의 균형이었다. 정 교수는 생계를 최우선에 두고 학업과 가사, 회사 일을 병행해야 했다. 남편이 운영하던 조선기자재 업체(조인ENG)에 함께 출퇴근하며 회사에서는 각자의 역할에 집중했다.
200곳이 넘는 거래처가 있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바쁠 수밖에 없었고 퇴근 후 남편이 집으로 향할 때 그녀는 곧바로 학교로 향했다.
정 교수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하루를 나누어 살아야 했다. 늘 시간을 쪼개 쓰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생활이었다"며 "피로가 누적되면서 체력적인 한계를 느낄 때도 많았지만 배움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도 철저했다. 그녀는 "생계를 중심에 두고 학업을 그 다음 순위에 두었으며 가사 일은 가족들과 조율해 나갔다. 퇴근 후에는 곧바로 학교로 향하고 새벽 시간을 활용해 반복 학습을 이어갔다"고 설명하며 "가족의 이해와 협력이 큰 힘이 됐다. 특히 남편의 지지는 가장 든든한 기반 이었다"고 밝혔다.



■ 위기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다


늦은 나이에 걷는 학문의 길은 녹록하지 않았다. 정 교수는 "영문학과에는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과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많았다.
자식 또래 학생들 속에서 홀로 공부하는 성인 학습자로서 늘 긴장 속에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나이 차이에서 오는 부담감도 컸다. 그녀는 "때로는 위축되기도 하고 자존감이 흔들리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에 '두 배로 노력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공부에 매진해 결국 장학생으로 선발됐고 조기졸업이라는 값진 성과도 이뤄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따로 있었다. 박사과정을 마치자마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다.
정 교수는 "논문을 마무리한 뒤 함께 여행을 가며 여유를 찾고 싶었는데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수술 후 남편은 1년 동안 재활치료를 받았고 저는 혼자 남아 논문을 마무리해야 했다. 두려움과 불안이 컸지만 멈출 수 없었다"고 회상한 다음 "논문에 몰두하면서 그 시간을 버텼고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큰 위기였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 한다"고 덧붙였다.



■ 박사학위를 받고 강단에 서다


힘들게 일과 학업을 병행해오다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아든 순간, 기쁨보다는 담담함이 먼저였다고 밝힌 정 교수는 "결국 해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나온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가슴이 벅찼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며 "삶을 짓누르고 있던 인생 숙제를 이루었다는 안도감과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교수로 임용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남편이었다. 정 교수는 "그는 저에게 기회를 베풀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저에 대한 사랑과 조건 없는 신뢰가 저를 성장시켰으며, '당신은 할 수 있다'는 말을 항상 해주었다. 늦은 나이에 다시 학업에 매진하는 저를 보며 걱정도 많이 했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감동했는지 회사일과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며 남편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 70세가 넘어 시작된 '세컨드 스테이지'


교수라는 직함은 끝이 아닌 새로운 삶이자 인생 2막(세컨드 스테이지)의 시작이라고 말한 그녀는 "제 개인적으로는 또 다른 삶의 시작이자 동시에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우리 사회는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노년기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특히 '현역으로 살아가는 삶'을 강조했다. "사람은 보통 30년 정도 일하고 이후에도 20~30년의 긴 노년기를 살아간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며 "일과 봉사, 취미와 배움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이에 관계없이 계속 성장할 수 있다. 배움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가능성을 직접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 복지는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완성 된다


정 교수가 몸담고 있는 사회적경제복지학과는 사회적경제학과 사회복지학이 융합된 학문 분야다. 기존의 사회복지학이 삶의 질 향상과 복지 서비스에 초점을 두었다면, 여기에 사회적경제의 가치와 방식이 더해져 보다 확장된 역할을 지향하는 학과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제는 단순한 복지 지식만으로는 다양한 사회 진출에 한계가 있다. 학생들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실천 중심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성장'과 '존중'이라고 밝히며 "지식 자체보다 그것을 통해 얼마나 성장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성인 학습자들은 각기 다른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와 경험을 존중하는 것이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또한 "배움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AI 시대일수록 끊임없이 탐색하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체감한 복지의 한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짚었다.
그녀는 "이론적으로는 제도와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히 인력 부족과 지역 간 격차, 공공과 민간의 경쟁 구조 속에서 서비스가 단절되는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제도는 비교적 잘 갖춰져 있지만 개인의 삶을 충분히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복지는 제도가 아니라 현장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실천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 오늘도 삶이라는 바다를 건너며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 교수는 자신의 삶을 담은 인생 에세이 집필을 꼽았다. 그녀는 "지나온 시간과 경험을 정리하며 그 속에서 얻은 의미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앞으로도 스스로를 성장시키며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노인과 바다를 언급하며 자신의 삶을 비유했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기 위해 긴 시간을 견디고, 결국 뼈만 남은 채 돌아오는 노인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의지를 느낀다.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밝히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삶은 늘 고단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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