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명의 남해시론 ]민선9기에 바란다, 군민은 숫자보다 태도를 먼저 본다
발행연월일 : 2026년 07월 10일(금) 01:00
민선7기 선거가 한창이던 그 무렵, 나는 단지 한 사람을 돕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삶의 한복판에서, 내가 무엇을 옳다고 믿는지, 그리고 그 믿음을 어떤 방식으로 행동으로 옮길 것인지 매일 다시 묻고 있었다. 새벽이 답답하게 느껴지던 날들이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 것이 희망처럼 느껴지기보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또 시작된다는 사실로 다가오던 날들이었다. 그때 나는 병마와 싸우고 있었고, 몸은 이미 여러 차례의 수술과 치료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시기일수록 생각은 더 또렷해졌다. 무엇이 옳은가, 누구를 위해 사는가,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 앞에 서는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그 질문들은 책상 위의 문장이 아니라, 내가 직접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선거에 깊숙이 참여했다. 누군가를 세우는 과정에 함께한 것이지, 권력을 나누어 가지려는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그 차이는 내게 매우 중요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방향이 있다고 믿었고, 그 방향에 힘을 보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일종의 소명의식 외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선거는 늘 그렇듯 단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움직였고, 각자의 기대를 품었으며, 때로는 서로를 오해했다. 그 속에서 나는 더욱 분명해졌다. 거짓은 안 된다. 사람을 꾸며내서도 안 되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해서도 안 된다. 공동체는 결국 진실 위에서만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거의 열기 속에서도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돌아보려 애썼다. 간암 치료는 나를 자주 멈춰 세웠고, 멈춘 자리에서 나는 지나온 세월을 되짚었다. 남해에서 살아온 수십 년, 글을 쓰며 생각을 옮기던 시간, 때로는 누군가의 마음을 시원하게도 하고, 때로는 비수처럼 남았을 글들도 있었다. 나는 결코 힘으로 밀어붙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머리로 세상을 이해하고 공동체에 보탬이 되려는 마음만큼은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한 마음이 있었기에 선거는 단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내 삶의 윤리와 태도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선거가 끝난 뒤 나는 일부러 권력의 중심에서 비켜나가고자 애썼다. 권력의 언저리에 머무르는 것조차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권력은 특정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군민의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선거 직후, 인수위의 참여 요청에 응하지 않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끝없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정이었다. 사흘 밤낮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과 숲, 비와 안개가 섞인 여름의 동토, 그 모든 것이 한없는 시간처럼 흘러갔다.



그 기차 안에서 나는 오래 생각했다. 인간이 애써 붙들고 있는 권력과 자리, 명분과 체면,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갈등이 과연 얼마나 큰 것인지. 광활한 자연 앞에서 그것들은 참으로 작아 보였다. 그 길을 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몸을 쉬게 하고 싶었고,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쓸모없는 자리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오만과 편견이 없었는지 돌아보았다. 혹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혹시 내가 지키려던 것이 사실은 나를 위한 변명은 아니었는지 묻고 또 물었다.



그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을 한 번 더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시베리아의 거대한 풍경은 나에게 말해 주는 듯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지로 기억된다고. 그리고 정치도 예외가 아니라고. 거창한 말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어떤 선택을 했는가, 누구를 향해 얼마나 절제했는가, 공동체 앞에서 얼마나 겸손했는가였다. 그래서 나는 그 길 위에서 더욱 분명한 결심을 했다. 권력은 탐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지는 것이며, 맡겨진 권력은 오로지 군민만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이런 내 경험을 떠올리며 지금의 민선9기 남해군수직 인수위원회 예산 논란을 보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남해군 조례는 인수위원에게 예산 범위 안에서 수당과 여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는 아니다. 그러나 총 2,793만 원 중 2,717만 원, 즉 97% 이상이 위원 수당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주민의 눈높이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법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고, 공동체의 신뢰는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인수위원회는 단순히 앉아서 회의만 하는 자리가 아니다. 새로운 군정의 방향을 살피고, 현안을 점검하고,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앞으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고민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렇다면 예산 역시 그 활동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배분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조사비, 현장 방문비, 정책 검토비, 백서 발간비 같은 항목은 형식적인 장식이 아니라 인수위의 실질을 보여주는 요소다. 그런데 대부분의 예산이 수당으로만 집행되었다면, 주민들은 그 자리를 "준비"보다 "보상"이 앞서는 구조로 읽을 수밖에 없다.



다른 지역의 사례는 더욱 분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창원시장직 인수위는 수당 지급이 가능함에도 전원 무보수로 활동하기로 했고, 자원봉사와 재능기부의 형식으로 시정 인수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모든 지역이 같은 방식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비교 가능한 사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선택이 단 하나의 길 뿐은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그 선택이 언제나 가장 적절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지역일수록, 작은 절제와 자발적 양보가 더 큰 신뢰를 만든다.



남해는 재정이 여유로운 곳이 아니다. 그렇기에 20일짜리 한시 기구에 어떤 예산을 어떻게 쓰는가는 단순한 행정 기술이 아니라 상징이 된다. 군민은 숫자보다 태도를 먼저 본다. 정말 군정을 준비하기 위한 기구였다면, 예산의 배분에서 그 진심이 보였어야 한다. 그러나 수당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보일 때,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정말 필요한 데 쓰인 것인가, 아니면 형식만 남은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민선7기 당시 끊임없이 떠올렸던 질문도 결국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무엇으로 변하는가. 내일이 오늘이 될 때, 우리는 무엇을 남기는가. 겉으로는 제도가 정당해 보여도, 실제로는 공동체의 납득을 얻지 못하는 일이 있다. 반대로 법적 의무가 없더라도 스스로 절제하고 양보하는 행동은 오래 기억된다. 정치와 행정은 바로 그 차이에서 신뢰를 얻는다. 수단이 정당한가, 그리고 그 선택이 군민을 향하고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새 군정은 출발할 자격을 갖는다.



나는 그때 남해를 떠나 시베리아의 끝을 달리면서도 결국 다시 남해를 생각했다. 나를 세운 고향, 내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해 준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갈 내일. 그 모든 것을 생각할 때마다 내게 남는 답은 하나였다. 권력은 개인의 자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것. 그리고 그 책임은 늘 절제와 투명성 위에 서야 한다는 것.



민선9기의 시작은 아직 길의 초입이다. 그래서 더더욱 첫 단추가 중요하다. 군민은 거창한 구호보다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를 기억한다. 예산을 어떻게 나누었는지, 어떤 기준으로 결정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납득 가능했는지가 이후의 신뢰를 좌우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변명보다 설명이고, 해명보다 성찰이다. 법을 지켰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그렇게 했는지, 다른 길은 없었는지, 군민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것이 과연 합당한지까지 답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그 질문을 믿는다. 진실은 오로지 오늘뿐이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얼굴이 된다. 선거에 깊숙이 참여해 봤던 나의 경험과 시베리아 횡단열차 위에서의 긴 사유, 그리고 지금의 인수위 예산 논란은 결국 한 가지 문장으로 이어진다. 공동체를 위한 자리는 스스로를 낮출 때 비로소 품격을 얻는다. 그 품격이 없다면, 아무리 큰 예산도 신뢰를 사지 못한다. 그리고 신뢰가 무너지면, 다음의 군정은 시작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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