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헌 원문으로 통사를 세우다' 4년 집념으로 문헌·사료에 충실한 '남해 역사' 출간

남해해성고·창선고 전(前)최성기 교장, "원문에 충실한 지역사 기록 남기고 싶었다"
문헌과 사료로 읽는 남해 역사 이야기와 고문헌으로 읽는 남해 역사 이야기 해제집 집필
720쪽 본책·420쪽 해제집에 삼국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집대성
16종 읍지·지리지 직접 판독…"원문에 충실한 지역사 기록"

홍성진 선임기자
발행연월일 : 2026년 08월 21일(금) 16:21

수려한 풍광으로 '보물섬'이라 불리는 경남 남해군의 역사를 고문헌과 사료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종합 역사서가 출간됐다.
최성기 남해해성고·창선고 전(前) 교장

전 남해해성고등학교장 최성기 저자가 4년 동안 집념을 갖고 집필한 『문헌(文獻)과 사료(史料)로 읽는 南海 歷史 이야기』는 720쪽의 본책과 420쪽 분량의 부록 『해제집』으로 구성됐다.
그동안 남해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은 여러 권 나왔지만, 특정 시대나 인물,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구한말까지 남해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아우른 종합 역사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평생 교육계에 몸담아 온 최 전 교장은 퇴임 후 자신의 손으로 지역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겠다는 오랜 뜻을 품고 이번 작업에 착수했다.
남해해성고등학교장을 거쳐 창선고 초빙 교장을 역임한 최 전 교장은 2022년 제1회 남해교육상을 수상했으며, 교직을 떠난 뒤에도 지역 언론 칼럼 등을 통해 교육과 향토사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이번 책의 출발점은 2022년 서울대학교로부터 기증받은 고지도 「진주목장창선도지도(晉州牧場昌善島地圖)」였다.
약 150년 전 제작된 지도에는 오늘날과 다른 창선도의 지명과 공간 구조, 수군 및 목장 시설이 나타나 있었다.
이를 본 최 전 교장은 '옛 남해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그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라는 질문을 품었다고 한다.
이후 서울대 규장각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 소장된 남해 관련 고지도와 고문헌을 찾아 자료를 모으고 시대별로 정리했다.
흩어진 기록을 하나씩 연결하는 과정에서 남해의 역사를 한 권으로 체계화해야겠다는 결심도 구체화됐다.



흐릿한 한문 원문을 직접 판독하다


집필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지방 관아에서 작성된 읍지와 지리지의 원문 판독이었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국가 기록은 국역본을 참고할 수 있었지만, 읍지와 지리지는 대부분 한문 필사본이어서 글자 하나하나를 직접 확인해야 했다.
오랜 세월 탓에 글씨가 흐릿하거나 생소한 이체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많았다.
저자는 원문의 형태를 확인하기 위해 돋보기를 사용하고, 1만 4천여 자에 이르는 『이체자사전』을 대조하면서 한 글자의 의미를 확인하는 데 수시간을 들이기도 했다.
여러 문헌을 함께 살펴 지명과 인명, 기록의 맥락을 확인하는 작업도 반복했다.
한문을 전공하지 않은 저자에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귀한 기록을 지금의 우리 글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긴 작업을 이어가게 한 힘이 됐다.
최 전 교장이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 집필 원칙은 '원문에 충실하는 것'이다.
기존에 발간된 역사서나 문화재 안내판 등을 원문과 대조하면서 한자와 지명, 인명, 호(號) 등이 잘못 표기된 사례도 확인했다.
그는 잘못된 기록이 반복돼 사실처럼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원문 자료를 직접 확인하고 수정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한다.



정치·군사에서 생활사까지 폭넓게 조명


책은 남해의 역사를 정치와 행정에 한정하지 않고 군사·조세·농어업·교육·신앙·생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살펴보았다.
남해는 바다와 섬을 기반으로 한 삶의 터전인 동시에 해상 교통과 군사 방비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책에는 조선시대 수군 진보의 배치와 군기(軍器), 성곽과 관아, 목장의 운영, 조세와 물자의 수송 등에 관한 기록이 담겼다.
죽방렴을 비롯한 전통 어업, 마을의 노거수와 사우(祠宇), 비문, 금산의 신앙과 경관 등도 함께 다뤄 지역의 역사적 공간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노량해전과 관음포에 깃든 호국의 역사, 남해를 거쳐 간 유배인과 문인들의 흔적을 통해서는 남해가 전쟁과 정치, 사상과 문학이 교차한 공간이었음을 살펴보고, 독일마을과 파독 관련 유산까지 담아 과거의 기록이 현재의 남해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조명했다.
특히 1598년 이후 남해를 이끈 현령과 군수 250명의 부임·이임 연월과 치적을 관련 사료와 대조해 정리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지역 행정의 흐름을 인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425년부터 1907년까지 16종 읍지·지리지 수록


부록 『해제집』에는 현존하는 1425년 『경상도지리지』의 「곤남군」 기록부터 1907년 『경상남도 남해군읍지』까지 16종의 읍지와 지리지를 직접 판독해 정리했다.
420여 쪽에 이르는 해제집에는 원문과 독음, 번역을 함께 실었다. 산천과 행정구역, 성곽과 관아, 학교와 사찰, 인물과 풍속, 군사와 조세 등 당시 지역사회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망라돼 있다.
최 전 교장은 읍지와 지리지를 단순한 옛 지리 기록으로 보지 않았다. 기록 속에는 이름난 인물과 큰 사건뿐 아니라 농사를 짓고 바다로 나가며 가족과 마을을 지켜온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료를 읽는 일이 곧 남해 사람들의 삶과 지역의 역사적 뿌리를 되살리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저작에는 남해 지역사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 고(故) 김우영 교장선생님의 노력에 대한 감사의 뜻도 담겼다. 최 전 교장은 여러 사료를 대조하는 과정에서 선학들의 연구가 후속 지역사 연구에 얼마나 중요한 기반이 되는지를 다시 확인했다고 말한다.



"지역사 연구의 새로운 출발점 되길"


최 전 교장은 이번 책을 완성된 역사서라기보다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하나의 출발점으로 생각한다.
방대한 자료를 다룬 만큼 미처 확인하지 못한 오류나 새롭게 발견될 사료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앞으로도 전국의 고문헌 소장기관을 찾아 남해와 관련된 자료를 계속 발굴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울러 향토사 연구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지속되기 어려운 만큼 지방자치단체와 교육·문화기관의 관심과 지원, 지역 연구자들이 함께하는 자발적인 연구 모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 책이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역사 교육 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교사와 학생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의 과거를 공인된 사료와 고문헌을 통해 이해한다면 남해에 대한 애정과 지역 정체성도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 전 교장은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한양에서 천 리 떨어진 '유배의 섬'으로 불리던 남해가 오늘날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는 '보물섬'으로 자리 잡기까지에는 이 땅에서 전답과 바다를 일구고 공동체를 지켜온 선조들의 삶과 지혜가 있었다는 것이다.
『문헌과 사료로 읽는 南海 歷史 이야기』는 고지도와 읍지·지리지, 비문과 사우, 군사와 조세, 농어업과 생활 문화에 이르기까지 흩어져 있던 기록을 하나의 역사적 흐름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거의 원문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 지역의 역사적 뿌리를 확인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남해 향토사 연구와 역사 교육의 새로운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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