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우 기고] 남해군 자연마을 지명의 변천
발행연월일 : 2026년 08월 21일(금) 16:34

남해군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군내 곳곳에서 발견된 지석묘와 패총이 있다는 사실과 온화한 기후, 비옥한 토지, 풍부한 해산물 등 자연환경이 사람살기 좋은 곳이요, 육지에 가깝다는 조건으로 보아 이미 선사시대부터 주민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이때부터 지명도 변화·발달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심천(深川), 평현(平峴), 봉성(鳳城), 다정(茶丁), 대곡(大谷), 당항(堂項), 서호(西湖), 대정(大丁), 오리(五里) 등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앞의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대가야 연합시대에 남해는 지역적으로 보아 고령가야(古寧伽倻)에 예속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남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나타난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남해군이 행정적으로 독립군명(獨立郡名)을 받은 것은 신라 제30대 문무왕 17년부터 31대 신문왕 7년(687~697) 사이로 최초의 군명은 전야산군(戰也山郡)이었다.
이 시기는 불교문화가 꽃피워진 태평스런 시대였고 대사(大寺), 윤산(輪山), 덕사촌(德査村), 금음(金音), 대정(大丁) 등의 지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남해지명에 있어 큰 변화는 경덕왕 16년(757) 단행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왕권 강화와 지방통치를 위해 우리말로 불리던 주·군·현의 이름을 중국 한자음으로 모두 변경하였는데 이때 음독식(音讀式), 훈독식(訓讀式) 또는 그 지방의 특수성이나 특산물, 기타 특수한 유래에 따라 지명을 개명하였다.
고려 현종(顯宗) 9년(1018)에 남해현(南海縣)이라 하였고 금전동이라는 마을을 이루고 화전(火田), 광석(鑛石) 채취로 살았으며, 면곡(棉谷)이라는 곳에 몇 가구가 살면서 면전(棉田)이라고 칭하고 농사와 광석 채취로 생활해 왔으며 창선(昌善), 산해(山海) 지명이 이때 생겼고, 충렬왕때 노구(蘆九), 공민왕때 개상이 개명되었다.
조선 태종(太宗) 14년(1414)에 남해현은 일시 하동과 병합되어 해양현(海陽縣)이 되었다가 동 17년에 남해현으로 복귀되었고 세종 6년에 곤명현(昆明縣, 현 사천시)과 병합하여 곤남군(昆南郡)이라 하였다가 다시 분리되어 남해현이 되었다.
선소(船所)는 조선시대부터 남해의 관문 역할을 해 왔고, 신증 동국여지승람 「남해현」조에 염전포(鹽田浦), 대포(大浦), 덕신역(德申驛), 모답포(毛沓浦) 등의 지명이 나타나며 고종 32년(1895)에 남해현은 남해군으로 개명되었다.
또한 이 시기 일본에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둔전(屯田), 냉천(冷泉), 남치(南峙), 진앞, 병지, 몰상포, 셋개 등 국방에 관련된 많은 지명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일제는 1914년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전국의 모든 행정구역을 일제히 폐치(廢置), 분합(分合)하는 단군 이래 최대의 행정구역 개편작업을 벌렸다.
이때 대부분의 명칭들이 폐지되거나 찢겨지고 또 붙여지면서 마치 조립식 장난감처럼 새로 만들어졌다.
개명 수법은 전국 여러 곳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땅에 붙여진 지명은 아무런 연고도 내력도 모르는 처지에서 오로지 쉽고 간편함만을 좇아 짜깁기 식 합성지명이 생겨났다.
갈곶이가 갈화(葛花), 갓곡이 입현(笠峴), 고잔이 화전(花田), 구미(龜尾)가 구미(九尾), 내아래가 천하(川下), 너웃개가 광포(廣浦), 드므개가 두모(豆毛), 둔전(屯田)이 동정(東丁), 대해동이 대사(大寺), 몰개넘이 사항(沙項), 문고개가 문현(門峴), 배구미가 선구(仙區), 비란(飛鸞)이 비란(非鸞), 삼화(三花)가 봉화(鳳花), 오용(五龍)이 오용(五用), 어리올(魚里尾)이 관당(觀塘), 우모(牛毛)가 야촌(野村), 적개토꿀이 섬호(蟾湖), 지푼내가 심천(深川), 째죽뱅이가 조족방(鳥足坊), 호포(湖浦)가 서상(西上) 등으로 변경되면서 두 음절 지명이 많이 생겨났다.
광복 이후 남해지명은 1983년 봉성(鳳城)이 서면(西面)에서 남해읍으로 관할 구역이 변경되었고,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9409호로 남해면이 남해읍으로 승격되어 1읍 7면이 되었다.
그 후 1986년 3월 28일자 대통령령 제 11874호로 상주출장소(尙州出張所), 미조출장소(彌助出張所)가 면으로 승격되어 1읍 9개면이 되었다.



■ 지명 유래의 분류 기준



1) 자연환경

우리나라는 산지 지형이 대부분이고 예전부터 자연에 대한 경외감(敬畏感)이 남달랐던 조상들은 유달리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지명을 붙여오곤 했다. 또한 주변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아 지명이 그곳에 위치하게 된 이유와 의미를 지니며 불리었으므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또 비슷비슷한 지명이 곳곳에 나타난다.
여기서 자연숭배에 대한 선대들의 사고를 살펴보면 해·달·별 등과 같은 천체 현상과 땅·불·물·샘·산악 등과 같은 지상현상 그리고 동·식물 등을 대상으로 숭배하여 우주간의 삼라만상은 인간과 같은 생명, 감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애니미즘이란 원시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자연 그 자체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깃든 정령(精靈)을 섬기는 것이다.
즉 자연을 자연 그대로 보지 않고 정령으로 꽉 차있는 신적 자연, 죽어 있는 자연이 아닌 살아있는 자연으로 파악하였으며 자연과 인간이 감정이입과정을 가지고 동일시하였고 자연과의 조화 내지는 부합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① 산지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은 산을 배경으로 하여 의식주 해결을 비롯한 경제생활을 영위해 왔다. 우리 조상들은 산을 등지고 마을을 형성하여 왔으며 산을 귀중히 여기고 신성시하였으니, 이는 우리나라 땅이름에 산지지명을 많이 낳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산을 숭배해 왔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약 65.8%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산지와 관련된 지명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산을 배경으로 한 마을의 형성, 산에 대한 원시신앙 등이 의식주 해결을 비롯한 경제 생활을 영위하기 편리했기 때문에 산계 지명을 낳게 한 원인이 됨과 동시에 한국지명 한자어의 통계에서도 산은 가장 빈도(頻度)가 높은 지명어로 지적되고 있다.
남해읍의 남산(南山)동, 동뫼, 이동면의 난음(蘭陰), 난죽(蘭竹), 난양(蘭陽), 남산모, 금평(錦坪), 상주면의 금양(錦陽), 삼동면의 동메, 중메, 내산(內山), 남면의 독메, 운암(雲岩), 서면의 정주당, 설천면의 송등촌, 남산모, 구들메 등이 이에 해당된다.
남산동, 동뫼, 남산모, 동메, 중메, 독메, 남산모 등 방위를 표시하는 산지지명 마을은 대체로 언덕에 가까운 소구릉에 속한 고도 30~60m의 낮은 산지를 따라 발달하고 있다.
구들뫼는 371m 구두산(龜頭山)의 60m 산록에 위치한 자연마을이며, 정주당은 781m 망운산 기슭에 위치하며, 금평·금양·내산은 665m 금산을 중심으로 산록사면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난음·난죽·난양은 고도가 높지 않은 난화산을 끼고 산록에 형성된 마을이고, 운암(雲岩)은 앞산인 구름방 이름을 따서 지은 지명으로 고도 50m의 산록에 위치한 마을이다.
지역의 자연적 조건에 따라 지명을 명명함으로써 같은 자연마을이 자연적 조건이 비슷한 인접 지역에서도 중복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남산과 동메지명으로 남해 전 지역에 고르게 나타나고 있다.



② 물가(水邊)

우리나라는 산지지역이 많아 큰 강과 여기에서 갈라진 지류(支流)들이 각 고을과 지역을 끼고 흘러든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음료수,농업용수로 이용되었으며 또한 지역의 명칭으로 사용됨으로써 지명이 하천(河川)·호수(湖水)·지소(池沼) 등 수원시설(水源施設)과 서로 연계되어 있기도 했다.
물가지명은 하천, 우물, 연못과 관련되어 나타나는데, 하천지명은 남해읍의 지푼내. 이동면의 고랑모, 봇골, 세미곡. 삼동면의 터는고랑, 동천(洞天), 내동천(洞天), 금천(錦川). 미조면의 내아래(川下), 남면의 천변촌(川邊村), 고랑담, 고랑모, 가천(加川), 고랑모. 서면의 서호(西湖), 고현면의 대계(大溪), 고랑몰, 고랑모. 설천면의 고랑모, 고평, 모천(慕川), 봇골, 앞고랑. 창선면의 너른내, 맑은골, 보천(保川), 세미골 등이 있다.
강수량이 많은 다우지라서 하천의 발달은 자연적인 현상이며, 물가지명 중 하천관련 지명이 가장 많이 나타났다. 마을 중심축에서 고랑 건너편에 있는 마을을 지칭하여 고랑이란 이름으로 불러왔는데 자연마을의 분포가 대체로 수계를 끼고 고랑 주변으로 확산되면서 형성된 연유 때문이다. 고랑 주변의 마을 형성은 하천 범람으로 인한 침수피해를 대비해 위치 선정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명을 연구하면서 찾아낸 공통점은 자연마을 지명을 선정함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축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여 그 축을 기준으로 지명을 부여하였다는 것을 파악하였다.
우물지명은 이동면의 참새미마을, 서면의 우물개, 고현면의 천동(泉洞), 설천면의 샘모, 창선면의 찬새미·통새미·세민날 등인데 식수가 귀한 섬지역인 창선면에 우물지명의 분포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연못지명은 삼동면의 큰못개, 고현면의 행댕밑, 창선면의 상지동(上池洞) 등이 있다.
물가지명 특징 중 하나는 많은 물을 저장하는 호수관련 지명이나 땅속 지질과 연계되는 온천지명은 남해군 자연환경 조건에서는 연관성이 적어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음에 계속...

임종옥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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