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우 기고] 남해군 자연마을 지명의 변천 #2
발행연월일 : 2026년 09월 04일(금) 21:28
임종옥 교육학박사
③ 형태(지형)



지명에 있어서 풍수지리설의 영향은 매우 크며 용·봉·두·계·학자를 사용한 것은 대부분 풍수설과 관계가 깊다.
신라 말기 이래 특히 조선조에 맹위를 떨친 민간신앙의 하나인 풍수설은 형태지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느 곳 지명은 풍수사상과 연결하여 짓기도 하고 어떤 지명은 그와 관련하여 고치기도 했다.
장목(獐項)은 다른 곳으로 통하는 고개의 잘록하고 좁은 곳을 일컫는 지명어이며 삼동면의 손목, 서면의 노루목, 남면의 손목, 이동면의 목모·등모, 창선면의 단목 등이다.
또한 곶·갑은 해안선에 육지가 또는 평야에 산기슭이나 불쑥 나온 지세에 붙인 지명어이다. 지형의 생김새가 마치 어떤 동물의 모양과 비슷하여 붙인 지명으로 봉황, 용, 범 등은 옛사람들이 상서로운 동물로 신성시하였기 때문이다.
용(龍)은 지상에 있을 때는 물속에 있다고 생각해 왔으므로 연, 소, 폭, 호 등 물과 관련된 지명에 많이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의 웅덩이를 용소(龍沼), 용추(龍湫)라고 하는데 대개 용이 살고 있었다는 전설을 흘리면서 전국 여러 곳에 보통 명사 같은 지명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동면의 용소(龍沼)·청룡촌(靑龍村), 미조면의 서리곶이(雪里)·소설리(小雪里), 서면의 가랑고지·회룡(回龍), 설천면의 구룡포(九龍浦)·용강(龍岡)·도렁골, 창선면의 구룡(九龍) 등이다.
동물의 형태를 본떠 지은 이름으로는 남해읍의 은호정·새방·몰뫼, 이동면의 꼬막개(顧母)·강머리(光頭), 삼동면의 삼마곡(三馬谷), 미조면의 호도(虎島)부락·새섬(鳥島), 남면의 우형(牛形)·범애골(宿虎), 서면의 게재, 고현면의 이어(伊於)·도마(都馬)·데머리·방울터, 설천면의 비란(非鸞)·지량·우륵개·봉우(鳳羽)·게섬모, 창선면의 구디 등이다.
지형의 형태를 본떠 지은 지명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남해읍의 몰랑·언덕모·아산(牙山)·사부랑·들사부랑·평지모·큰골·큰갓곡·작은갓곡, 이동면의 분두고랑·무지개골·등마을·석평(席坪)·조금(調琴)날·평지(平地)모·세막골, 상주면의 상주(尙州)·벽잡개(碧蓮), 삼동면의 수장포(袖長浦)·선장곡(仙掌谷)·소시랑고지·북섬·굴앞·평지마실·가는골·평지모·듬세곡·물건(勿巾),미조면의 할미기·소올통, 남면의 평지촌(平地村)·두곡(斗谷), 서면의 쇳골·높은들·자잣골·우물(于勿), 고현면의 마당모·한실·큰동네·궁지목·한실·몰랑모·차면(車面)·작은차면·고래·달실, 설천면의 산골모·평지모·골고랑·옥동(玉洞)·덕개등, 창선면의 큰골·소벽(小碧)·벽재(大碧)·개린개·대곡(大谷) 등이다.



④ 바위


우리 민족의 원시 신앙에서 비롯된 산악숭배(崇拜)뿐만 아니라 암석 숭배에 관한 샤머니즘이 지명으로 나타난다. 특히, 우리 민족은 바위를 영원성의 상징으로 보았고 역사적인 인물이 바위에 잠시 앉았다가 가도 그 바위에 이름을 붙이고 신성하게 여겼다.
땅이 좁은 나라이지만 암석이 고루 분포돼 있고 사철 기후 변화와 공기나 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제각기 그 모습을 자랑한다. 그러한 각양각색의 바위들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신비감을 맛보기도 했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으며 때로는 바위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고 구수한 전설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특별한 모양의 바위는 어느 한 마을의 상징이 되기도 해서 바위 이름 자체가 그 마을 이름을 대신하기도 했다. 남해읍과 고현면의 배방은 바위 모양이 고기잡이배를 닮았다 하여 부르게 된 지명으로 바닷가에 있는 바위를 보면서 생업인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이 친밀감을 가지고 지은 지명으로 생각된다. 또한 서면의 제들은 마을 앞 들판에 있는 돼지 형상 바위를 길상(吉祥)으로 표현하여 복과 행운이 깃드는 살기좋은 마을이며 안식처임을 내세우는 본보기에 해당한다. 그 외에 삼동면의 화암(花岩)·돌곡, 설천면의 감방우(甘岩), 창선면의 평풍비렁 등이 있다.
바위는 믿음직하고 의연하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여러 자연물 중에서 이러한 바위의 무거움과 변치 않음을 좋아했고 닮으려 했다. 그래서 마을 뒤 산비탈에 박힌 바위나 동구 밖 같은 데 우뚝 서있는 바위를 보고 이름을 붙이며 의미를 새겼다.
현재 바위와 관련된 지명은 창선면 평풍비렁 외에는 1970년대 국가 주도의 새마을 운동과 이후 마을 개선 사업 등 각종 토목공사를 통하여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⑤ 방위(위치-순서)


마을 지명에 위-가운데-아래, 앞-뒤, 안-밖, 동-서, 원-근, 그리고 어떤 목표물을 중심으로 해서 아주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좀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어휘(語彙)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의 삶의 터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방향 및 숫자를 나타내는 지명은 명칭을 제정하거나 호칭하는 데는 편리하나 지명의 역사적 전통성 관점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마을 이름에 위치를 구체적으로 넣어 설명하는 것으로 위·아래·사이·안·들과 같이 가장 단순하게 지어 부른 것이다. 이러한 이름들은 다분히 원시적이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따라 지어진 지명들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방방곡곡(坊坊曲曲)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가 있다.
위·가운데·아래(상하)지명은 방위지명 중 가장 많이 나타나는데 남해읍의 중촌(中村)·웃몰·아랫모·아랫담·아랫모·웃모, 이동면의 들마을·아랫마을·웃마을, 삼동면의 아랫몰·웃모실, 미조면의 웃사랑·아랫사랑, 남면의 더우개·아랫담·웃땀·아래땀·아랫담·웃담·오리(五里)·웃마을·아랫모·중촌(中村), 서면의 아랫모·중리(中里)·아랫널음지·들마을, 고현면의 아랫땀·웃땀·웃모·아랫골·웃모·가운데모·중간모·아랫모·웃몰·아랫담·가운데모·웃모·중간몰·웃모실, 설천면의 상촌·웃모·가운데모·아랫마을·웃마을·들마을, 창선면의 아랫말·웃골·중촌(中村) 등이 있다.
상하지명은 대체로 산록 사면의 경사지에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왜적의 침입에 대한 대피와 방어라는 측면에서 평지보다는 유리한 지역에 자연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음양지명은 남해읍의 음실·양지(陽地)·음지(陰地), 이동면의 양지·양지촌·양지모, 삼동면의 음지편(陰地便)·양지편·양지촌(陽地村), 남면의 차양(遮陽)·양지·양지뜸·음지, 서면의 양지편·음지편·예계(禮戒)방·양지펜·음지펜·양지·음지, 고현면의 양지펜·음지펜, 설천면의 양지펜·양지모·양지(陽地), 창선면의 양지마을 등이 있다.
한랭한 북서 계절풍을 막아 주는 데다가 일조량이 많은 양지쪽의 배산임수 장소가 전통적인 이상 입지로 선택되고 있다.
이러한 양지 입지는 지명에 반영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장 우세한 점유율을 보인다.
양지지명이 음지지명보다 배 이상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인간 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햇빛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으며 남해 자연마을 지명에서도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단어이다.
양지에 비해 음지마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명이 변경되거나 소멸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가 있었는데 그 이유로는 주민들이 음지 명칭에 대한 거부감을 예로 들 수가 있었다.
내외지명은 남해읍의 곤, 이동면의 골안·안골, 남면의 내곡촌(內谷村)·안땀·안모·등안모, 서면의 안모·바깥모·새앤모·바깥모, 고현면의 안마을·배강마을·골안·날끝·안타골·골안, 설천면의 안골·골안모, 창선면의 날부리끝 등이 있다.
대개 규모가 작은 지역 집단을 골이란 개념으로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산간벽지일수록 골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고 평야 지대일수록 마을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였다.
앞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남해지역은 골짜기를 중심으로 작은 규모의 자연마을이 많이 발달하였다는 그것을 지명으로 짐작할 수 있다.
동서남북지명은 남해읍의 쇠퍼니, 남면의 서촌·동촌, 고현면의 동펜·동도마·서도마·북펜·동섬·서실(西室)모, 창선면의 서대(西大)·동대(東大)·서편 등인데 주로 서쪽과 동쪽 방향의 지명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서는 음지쪽을 동은 양지쪽을 가리키고 있다.
건너지명은 남해읍의 구석모·저넘, 이동면의 건너몰·궁턱모·굼턱모, 삼동면의 궁턱모, 고현면의 구숙모·건느몰, 설천면의 구석모, 창선면의 지껀네 등이 있다.
전후지명은 남면의 딧들, 고현면의 뒷모, 설천면의 도릿모, 창선면의 후인(厚仁) 등인데 특징은 바다를 기준으로 하여 뒤쪽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으로 자연마을 지명을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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