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미래신문 기획특집◁ 남해 우리문화 찾기 그리고 관광자원화… 막걸리 따르며 성인식을 치러준 '두곡 화전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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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미래신문 기획특집◁ 남해 우리문화 찾기 그리고 관광자원화… 막걸리 따르며 성인식을 치러준 '두곡 화전놀이'
홍성진 선임기자
2023년 01월 06일(금) 12:08
▲앵강만이 훤히 내려다보였다는 '잔치 몰랭이'에서 어린시절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문정현 마을 주민.
남해미래신문은 '가장 토속적이고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믿음으로 우리 지역의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소개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공동체 의식회복에 기여할 만한 지역 콘텐츠 발굴에 주력하는 기획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55호부터 총 4회에 걸쳐 남해 매놓기문화에 대해 소개한 본지 보도는 최근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발굴사업에 선정돼 남해고유의 전통을 계승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잊혀질 뻔한 남해고유문화들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과 조명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호에서는 일반적으로 행해진 타 지역 꽃놀이 문화와 차별되는 우리 지역의 독특했던 두곡마을 화전놀이를 조명한다. 두곡마을 꽃놀이는 전국적으로 행해졌던 일반적인 꽃놀이 문화와 다른 독특한 남해만의 문화였다.

<편집자 주>


두곡마을에서 행해진 전통문화인 화전 꽃놀이의 의미와 진행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두곡마을 김국진 어르신 내외. 김국진 어르신은 과거 꽃놀이 행사시 꽹과리를 다루었다고 한다.


△ 남면 두곡 마을은

청룡산을 옆에 끼고 마을 앞의 넓은 들을 의지해 형성된 두곡마을. 옛날에 '쇠를 굽던 곳'이라 하여 전동(煎銅)이라 명명되었다. 정조와 순조 때까지 점동리(店洞里)로 독립마을이었으나 고종 32년(1895) 행정구역 개편 시 두곡마을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일설에는 곡식의 양을 가늠하데 쓰는 말(斗)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두곡이라 했다고 한다. 두곡해수욕장에는 1972년 주민들이 조성한 500여주의 해송림(海松林)이 있고 마을 앞 서쪽의 낮은 구릉에는 임진왜란 때 왜구를 방비하기 위해 쌓은 고진성(古鎭城) 흔적이 남아 있다. 청룡산(133.1m) 정상에는 장군대좌(將軍臺座)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어떤 장군이 고진성을 중심으로 이 곳에서 지휘해 적을 격파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주민들은 앵강만이 내려다 보이는 청룡산 줄기 '잔치 몰랭이'(당항리 산 309-5)라는 조그만 등성이에서 해마다 봄이면 화전놀이를 이어 왔는데 약 10여 년 전부터 마을 앞 해수욕장 송림에서 화전놀이를 열고 있다.



△ 철쭉 진달래 만개한 '잔치 몰랭이'

남면 두곡 화전놀이 장소는 마을을 감싸 안은 청룡산 줄기의 작은 등성이, '잔치 몰랭이'였다. 주민들에 따르면 '잔치 몰랭이' 인근에는 봄철이면 철쭉이 군락을 이루었으며 진달래가 유독 많이 피어 그야말로 꽃밭, 화전(花田)이었다고 한다.

앵강만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이곳은 땔감이 귀중했던 과거에는 나무들이 많지 않아 봄철이면 철쭉과 진달래로 온 산이 붉었기에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꽃놀이를 하기에 최적지였다.



△두곡마을 '화전 꽃놀이' 진행 방식

예로부터 남해의 다른 이름은 꽃밭(花田)이었다. 온 산과 들이 꽃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과거 남해에는 각 마을마다 여러 형태의 꽃놀이가 행해졌는데, 현재 공식적으로 문헌(면지 등)에 남아 있는 것은 두곡마을 '화전 꽃놀이'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짧게 서술되어 있어 안타깝다.

면지 두곡마을편에 '이 마을에는 청룡산에서 뻗어 내린 잔치 몰랭이라는 조그만 등성이에서 해마다 봄이면 화전놀이를 했는데 약 10여 년 전부터 이 잔치를 마을 앞 해수욕장 송림 그늘에서 열고 있다고 기록 되어 있다. 이 외 다른 기록이 전무해 현재로서는 이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의지해 그 생성 연유와 구성내용을 살펴볼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1 '화전 꽃놀이' 날짜 정하기

주민들에 따르면 두곡마을 '화전 꽃놀이'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종의 공동체 잔치였다. 배고픈 긴 겨울을 지나 들과 산이 희망의 꽃으로 가득 할 시기, 바쁜 농번기에 접어들기 전인 4월 중순이나 말경에 마을 어른들이 택일해 화전 꽃놀이 날을 정했다고 한다.

#2 꽃놀이 준비날짜가 정해지면 주민들은 각자 먹거리와 꽹과리, 북, 장구, 징 등 즐길거리를 준비한다.

이렇게 장만한 음식을 꽃밭(화전) 속에서 마을주민과 함께 나누며 장단에 맞춰 춤도 추며 하루를 신나게 즐기면서 이웃간 오해도 풀고 공동체의식을 강화했다.

#3 마을주민 모두 음식 준비

반별 문화가 없었던 옛날에는 주민 모두가 음식을 각각 준비했는데 이후 반별 문화가 생긴 뒤에는 1반에서 8반까지 반 위주로 각각 책임지고 음식을 준비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마을어른 회의에서 13~16세 마을 청소년들 중 성숙한 청년을 선정하고 선정된 청년의 가정에서는 주민들이 함께 할 막걸리를 빚어 꽃놀이 날 한 동씩 내게 했다.

#4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즐겨

앵강만과 소치섬이 훤히 보이고 철쭉 진달래로 둘러쌓인 잔치 몰랭이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속속 모이게 되면 농악, 윷놀이, 석사, 진똘배기(야구와 비슷한 이 마을놀이) 등을 자연스럽게 즐겼다. 또한 모시적삼, 삼베적삼을 입은 어른들은 꽹꽈리나 장구 소리에 맞춰 원을 그리며 춤추었다고 한다. 이 때 행해진 풍습이 '총부를 내라'라는 성인식이었는데, 마을 동수는 선정된 청년들에게 이제부터 성인으로서 사회와 마을, 그리고 가정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성인주(막걸리)를 직접 따르는 의식을 진행한 것이다. 성인식이었다. 두곡 마을 화전놀이는 해가 질 때쯤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화전놀이 참고 사진.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마을 동수는 청년에게 이제부터 성인으로서 사회와 마을, 가정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성인주(막걸리)를 내렸다"

 
△두곡마을 '화전 꽃놀이'는 독특한 남해 공동체문화

#1 겨울 넘기고 봄 농번기 전 화합을 도모한 공동체행사
두곡마을 화전 꽃놀이는 만개한 철쭉이나 진달래를 즐기며 하루를 보내는 행사이지만 무엇보다 겨울을 이겨낸 노고를 위로하고 눈앞에 다가온 힘든 농사일을 상부상조하며 잘 마무리하기 위한 화합을 다지는 일종의 공동체 잔치라는 측면이 강하다.

주민들에 따르면 철쭉과 진달래가 만발한 마을 뒤편 '잔치 몰랭이'에서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장만한 음식과 막걸리를 나누고 흥에 겨우면 자연스럽게 장구나 꽹꽈리를 치며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또한 두곡 화전 꽃놀이는 타 지역과 달리 부녀자 중심의 꽃놀이가 아니라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한 공동체의 잔치였다. 나무가 주된 땔감이던 시절에는 큰 나무들이 거의 없어 온 산이 거의 철쭉이나 진달래로 붉었는데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이라 진달래로 꽃전을 만들어 먹었다. 꽃놀이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정하지 않았지만 보통 해가 지면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마을로 내려왔다. 과거 두곡마을 꽃놀이에 꽹꽈리를 잡았던 김국진(84) 어른은 "꽃놀이는 마을 주민 모두가 기다렸던 설레는 잔치였다. 그 옛날 전해들은 이야기는 꽃놀이 날은 마을 어른들이 결정했는데 보통 양력으로는 4월 중순이나 말경이었다"고 말했다.

#2 '총부를 내라' 독특한 화전(花田) 성인식(成人式) 행해
두곡마을 화전 꽃놀이는 타 지방의 꽃놀이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일종의 성인식인 '총부를 내라'라는 풍속이 함께 진행되었다. 이는 진달래 꽃잎을 따다가 화전(花煎)을 지져 먹거나 춤과 노래를 부르며 고단한 일상을 잊고 하루를 즐겼다는 일반적인 화전놀이와 구분된다.

두곡마을 화전 꽃놀이는 '총부를 내라'는 풍습이 이어져 왔다.

이 풍습은 일종의 성인식으로 두곡마을 '화전 꽃놀이'날 행해지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마을공동체 행사였다. 마을 어른들이 '화전 꽃놀이'날을 정할 때 13~16세 되는 마을 청소년들 중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청년을 선정해 그 청년이 '총부를 내게'하고 '화전 꽃놀이' 당일 마을에서 그를 성인으로 인정하며 장만해온 술(막걸리)를 함께 나누는 풍습이었다.

김국진 어른은 "총부를 내라는 풍습은 마을에서 누구 누구 집 아이가 나이가 이렇게 되고 농사일을 거들 정도로 육체적으로 성장했으며 향후 가정을 꾸릴 만큼 정신적으로 성장했음을 온 마을 주민들이 인정하는 일종의 성인식이었다. 마을어른들이 결정한 내용이 해당 가정에 알려지면 그 집에서는 막걸리(과거에는 직접 만듬)를 준비하고 다른 가정에서는 음식을 준비하는 화전 꽃놀이 풍습이었다"고 말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태어나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또한 노동력이 중요했던 농경사회에서는 한 아이의 성장은 그 가정뿐만 아니라 마을의 재산이었기 때문에 '총부(책임 부여)를 내게 하고 공동체의 일원(성인)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의미에서 두곡마을 '화전 꽃놀이'는 온 마을이 농번기를 앞두고 치른 유의미한 남해의 공동체문화 중 하나였다.


▲화전놀이 참고 사진.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관광객과 함께 하는 남해 화전 문화 기획(역사성+차별성)

남해다운 것 중 하나는 역사성에서 찾을 수 있겠다. 남해는 예로부터 지명자체도 화전(花田)으로 불렸다. 그렇기에 지명을 딴 화전별곡(花田別曲)이란 작품까지 전해지고 있다김구 자암집에 실린 '화전별곡'에 묘사된 남해는 당시도 매우 아름다운 그야말로 꽃밭(花田)임을 노래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화전놀이' 즉 꽃놀이 문화는 철쭉과 진달래 등 각종 꽃이 온 산을 뒤덮은 남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문화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두곡마을 꽃놀이는 단순히 화전을 구워먹으며 하루를 즐기는 타 지역의 일반적 꽃놀이 문화와 달랐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총부를 내라'는 의례(성인식)를 화전 꽃놀이 날 치른 것은 공동체의 결합과 단합을 위한 유의미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화전(花田)이라는 남해의 역사를 알리고 관광객이 참여하는 성인식을 치르는 등의 기획을 통해 잊혀져가는 남해의 문화 복원과 남해 문화의 관광자원화에 나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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