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미래신문 ▷사람 사는 이야기◁ 남면 선구 '현진호' 선장 정현진 씨, 추운 새벽 바다서 올린 건 물메기가 아니라 '정(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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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16(금) 11:47
남해미래신문 ▷사람 사는 이야기◁ 남면 선구 '현진호' 선장 정현진 씨, 추운 새벽 바다서 올린 건 물메기가 아니라 '정(情)'

추운 겨울 새벽 잡은 물메기 1,500마리… 군내 요양원과 경로당 등 이웃에게 나눠
"어르신들이 물메기 국 한 그릇 드시고 '시원하다, 고맙다' 말씀하실 때, 추위 녹아 내린다"

홍성진 선임기자
2026년 01월 16일(금) 10:25
▲겨울 새벽 찬바람에 물메기 통발중인 정현진 씨
▲ 서울 사람에서 다시 '선구마을 아들'로

겨울 새벽, 남면 선구마을의 공기는 날카로운 칼날 같다. 모두가 이불 속 온기를 탐할 시간, '현진호'의 엔진 소리가 고요한 바다를 깨운다. 조타석에 선 이는 정현진(51) 씨. 남면 일대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해 어르신들 사이에서 '막내'로 통하는 그다.
현진 씨는 남면 선구가 고향이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위해 진주로 떠났고, 이후 서울에서 20년 넘게 치열한 도시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10년 전, 그는 화려한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고향 바다로 돌아왔다.
돌아온 고향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마을의 손발'이 됐다. 마을 총무부터 체육회 사무국장까지, 지역사회의 궂은일은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도 행복더하기 봉사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듬직하게 돌아온 이 젊은이를 독차지하며 사랑을 보냈고, 그는 그 사랑에 보답하듯 생업인 통발 어업만큼이나 지역사회 봉사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



▲ 물메기 1,500마리에 담긴 따뜻한 약속

그의 진가는 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 더욱 빛난다. 어느 날 그는 결심했다. "내가 잡은 이 싱싱한 물메기를 우리 어르신들께 대접하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3년 전, 물메기가 풍년이던 그해 직접 잡은 물레기를 어려운 이웃에 나눴다.
그 약속은 올해도 이어졌다. 초반 조황이 좋지 않아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바다가 길을 열어주자 그는 어김없이 물메기를 싣고 달렸다.
군내 경로당은 물론 요양원, 노인전문병원 등 소외된 이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그렇게 올겨울에만 이웃에게 전해진 물메기가 벌써 1,500마리를 넘어섰다.
그냥 경매장에 내거나 바닷바람에 말려 시장에 팔면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는 물량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계산보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택했다.
"어르신들이 물메기 국 한 그릇 드시고 '아이고 시원하다, 고맙다' 말씀하실 때, 새벽 바다의 추위가 다 녹아내립니다. 제가 기억하는 남해의 맛을 어르신들과 공유하는 그 순간이 제게는 가장 큰 수확이죠."라고 말한다.


▲ 바다를 지키는 어부, 마음을 지키는 강사
그의 삶은 독특하다. 복합‧통발 면허의 현진호 선장으로 바다를 누비다가도, 육지에 오르면 (사)ESG 시민운동본부 남해지부장으로서 강단에 선다. 거친 바다 사나이와 냉철한 ESG 강사.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직업은 그의 철학 안에서 하나로 얽힌다.
"ESG라는 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바다를 터전 삼는 어부가 바다 환경을 지키고(E), 봉사단 활동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S), 정직하게 공동체를 돌보는 것(G)이 바로 실천이죠. 제게 봉사는 시민운동의 가장 따뜻한 얼굴입니다."이라 말한다.


▲ 남해라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젊은 힘'

아직은 본인의 생활 기반을 더 다져야 할 나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계보다 '남해라는 공동체의 정(情)'을 먼저 생각한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그가 새벽 바다로 나가는 이유는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감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식탁에 올릴 따뜻한 위로를 건져 올리기 위함이다.
정현진 씨는 말한다. "제가 잡은 물메기 한 그릇이 추운 겨울을 이겨낼 작은 힘이 되길 바랍니다. 남해 곳곳에 행복이 조금씩 더해지는 것, 그게 제 꿈입니다."
남해의 겨울이 다른 곳보다 유독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 그것은 정현진 씨처럼 바다에서 건져 올린 행복을 아낌없이 이웃과 나누는 '진짜 남해 사람'들이 우리 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농어촌에서 정현진 씨 같은 '젊은 어른'의 존재는 단순한 일꾼 그 이상이다. 그는 사라져가는 '정'이라는 가치를 실천으로 증명해내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보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막내로 남아주길 바라는 것은 지난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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