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자의 영화 이야기]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 지다

  • 즐겨찾기 추가
  • 2024.05.08(수) 22:29
[조기자의 영화 이야기]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 지다

故 변희봉 배우의 명장면들을 되돌아보며

조승현 jsh49@nhmirae.com
2023년 10월 06일(금) 14:05
▲'플란다스의 개'에서 '변 경비'로 등장해 '보일러 김씨'라는 아파트 괴담에 대해 열연하는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괴물'에서 송강호 배우의 가족인 '박희봉' 역으로 등장해 후반부, '손짓'을 통한 열연으로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연출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18일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 졌습니다.

영화계에 따르면 변희봉 배우는 향년 81세로, 췌장암 진단을 받고 완치 판정까지 받았으나 암이 재발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변희봉 배우는 1960년대 MBC 성우 공채 2기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래 1979년부터 굵직한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했으나, IMF 이후 "나이가 많은 순으로 출연료를 깎는다"며 "당시 조연 배우를 사람 취급 해주지 않아 방송계를 떠나려했다"고 말하며 당시 힘들었던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새파란 신인이었던 '봉준호' 감독에게서 영화 출연 제의가 찾아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신인 감독의 열정을 좋게 바라본 변희봉 배우는 송강호 배우와 함께 봉준호 감독을 대표하는 페르소나(감독과 언제나 함께하는 분신같은 배우)로 자리잡게 됩니다.

봉준호 감독과 변희봉 배우는 2000년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2003년 '살인의 추억', 2006년 '괴물', 2017년 '옥자'까지 4편의 영화를 함께하며, 한국 영화사에 두고두고 화자될 명장면들을 여럿 만들어냈죠.

변희봉 배우의 잊지못할 연기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는건 어떨까요.



■신 스틸러(시선강탈) 경비원…'플란다스의 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인, 봉준호 감독은 처음부터 빛났습니다. 비록 저예산에 정제되지않아 튀는듯한 엉뚱한 모습들도 보이지만 국민배우 '변희봉'과 글로벌 영화배우 '배두나'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만든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봉준호 감독답게 현대 한국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블랙코미디로 잘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변희봉 배우는 많은 역할을 맡지는 않았으나 작 중 주요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고, 특정 장면에서 엄청난 열연을 보여줬습니다. 영화는 당시 흥행에서 실패했으나 변희봉 배우는 엄청난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때 변희봉 배우가 맡은 '변 경비'는 아파트 지하에서 개고기를 먹으려다가 "혼자서 맛있는거 먹냐"면서 나타난 '관리소 주임'에게 '보일러 김씨'라는 아파트 괴담을 늘어놓는데 바로 이 부분이 명장면입니다. 짧게 요약하면 "보일러 김씨가 고치러간 아파트에서 30년간 보일러가 고쳐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아파트를 날림으로 공사한 시공업자들을 찾아가 싸움을 걸었는데, 시공업자들이 진실을 감추기 위해 보일러 김씨를 죽여버린다"는 무시무시한 괴담입니다. 즉, 관리소 주임이 바로 앞에 개고기가 들어있는 냄비의 뚜껑을 열어 진실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이 무시무시한 괴담 내뱉는 장면을 카메라 전환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변희봉 배우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변희봉 배우는 특유의 찰진 전라남도 사투리로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게 만드는 일품의 연기로 화답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변희봉 배우만이 할 수 있는, 대체불가능한 느낌을 받은 장면이었습니다.



■모자란 아들과 분열된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家長)…'괴물'

봉준호 감독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해 인터뷰마다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하던 변희봉 배우는 다시 한 번 '살인의 추억'으로 논두렁 롱테이크(카메라 전환 없이 길게 촬영하는 기법)로 송강호 배우와 함께 굉장히 인상깊은 연기를 남겼습니다.

또, 세 번째로 봉준호 감독과 협업한 '괴물'에서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열연'을 펼쳤습니다. 마지막 샷건을 겨누다 괴물에게 공격당하기 직전 피곤함에 찌들고, 체념 섞인 표정으로 한탄같이 나지막하게 "어여 가"라고 말하며, 손짓하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남을 명장면입니다. 자신의 실수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명확한 자포자기 상태에서 자기 자식들을 돌아보며 먼저 걱정하는 듯한 이 제스쳐를 한두가지 감정만으로 설명하기란 힘들 것입니다.

이는 봉준호 감독이 자꾸 같은 장면을 계속 반복시켜 촬영하게 만들자 진짜로 지쳐서 나오게 된 의도하지 않은 연기였지만, 변희봉 배우의 인상깊은 표정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명장면 또한 세상에 나올 수 없었겠죠. 변희봉 배우는 이때의 열연으로 2006년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데 성공합니다.

이 장면이 얼마나 인상깊었냐면 훗날 칸 영화제에서 만난 '졸업', '빠삐용', '레인 맨' 등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더스틴 호프먼'이 변희봉 배우를 알아보고는 자기 자식들에게 위의 명장면을 따라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변희봉 배우는 2020년 제11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대중문화예술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 정부 포상 훈장'인 '은관문화훈장'을 수여받는 영광을 이루기도했습니다.

/조승현 기자 jsh49@nhmirae.com
인기기사 TOP 5
남해
자치행정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