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제주 4 ·3사건, 박진경 대령 그리고 우리들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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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9(금) 11:49
역사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제주 4 ·3사건, 박진경 대령 그리고 우리들의 논쟁
2026년 01월 09일(금) 11:07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이며, 오랫동안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제주 4·3 사건은 2025년 현재까지도 격렬한 이념적, 역사적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다.
특히 1948년 당시 제주 주둔 제9연대장으로 부임하여 불과 43일 만에 암살당한 고(故) 박진경 대령을 둘러싼 평가는, 억울한 희생을 애도하는 '진실 규명'의 목소리가 얼마나 첨예한 '역사 해석의 투쟁'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근 그의 국가유공자 서훈 취소를 둘러싼 논란은, 역사의 법정에 다시 선 박진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대한민국이 여전히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거대한 이념의 장벽 앞에 서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갈등은 추상적인 논의를 넘어, 박진경 대령의 고향인 우리 지역에 설치된 그의 동상 철거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진보적 성향의 일부 남해군민들이 조성된 박진경 대령 동상을 철거하자고 난리"라는 현장의 목소리는,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연대감 속에서도 박진경이라는 인물을 '호국 영웅'으로 기려야 하는가, 아니면 '학살의 책임자'로서 그 기록을 지워야 하는가 하는 깊은 고뇌와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진경 대령을 "학살의 주범"으로 규정하는 측은 그의 지휘 스타일과 발언, 그리고 현장 작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1948년 5월 박 대령 부임 후 불과 한 달 열흘 만에 약 6,000명의 제주 도민이 체포되었음을 지적하며, 이는 당시 인구 대비 엄청난 비율로 무자비한 작전 수행의 증거로 제시한다.
특히 논란의 핵심인 "조선 민족 전체를 위해서는 30만 제주 도민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발언을 박진경을 암살한 손선호 하사와 연대장 참모 임부택 대위의 증언을 근거로 이를 "국가라는 추상적 실체를 위해 '국민'이라는 구체적 실존을 말살할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의 발로"로 해석한다. 또한 어린 소년까지 살해, 안내자 즉결 처형, 도주자 무차별 사살 명령 등 구체적인 "현장의 만행"을 손선호 하사의 법정 증언을 통해 강조하며, 이는 명백한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즉, 박진경의 작전이 "양민과 무장대를 구분하지 않는 무차별적"이었으며, "민간인 보호 의무를 방기한 행위"로 귀결되었다고 보고 있다.
반면, 박진경 대령을 "건국 전야의 희생양"이자 남로당 프락치의 음모에 희생된 "호국 영웅"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측은 제주 4·3을 "남로당의 조직적인 군 내부 침투 공작"과 연관 지으며, 1948년의 시대적 맥락(5·10 총선거 저지를 위한 남로당의 투쟁) 속에서 박진경 대령의 부임이 혼란한 치안을 수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강조한다.

가장 핵심적인 논란인 "30만 도민 희생" 발언에 대해서는 그 출처의 "신뢰성 결함"을 강력히 비판한다. 전임 책임자였던 김익렬 전 연대장의 유고는 지휘 노선을 두고 대립했던 인물의 논거라 "객관적 사료로 채택하기 어렵다"는 점과, 암살범들의 진술은 "상관 살해라는 중죄를 저지른 피고인 신분"으로서 "범행 명분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극적인 발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더 나아가 당시 30만 명 제주 인구 전체를 몰살하겠다는 발언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현실성 결여"된 주장이며, "폭동 진압을 위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결의"가 "악의적으로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작전의 실체에 대해서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측은 "무자비한 소탕과 대량 검거"를 강조한다면, 이에 반대하는 측은 박진경의 주된 전술이 "토벌'이 아닌 '분리'였으며, "사살이 아닌 생포를 원칙으로 했음"을 6,000명 체포 사례를 통해 역설한다.
또한 박진경 재임기간 동안 군경에 의한 사살자 수가 "약 25명 내외"였으며, 대규모 민간인 희생은 "박진경 사후, 특히 송요찬 연대장 시절의 '초토화 작전'과 1949년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발생"했음을 지적하며 그의 책임을 최소화한다. 이런 극단적인 해석 차이는 박진경 대령을 둘러싼 복잡한 진실을 파악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양측의 주장을 균형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박진경 대령의 암살 사건 또한 암살을 주도한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를 "남로당 프락치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으나", 재판 과정에서 "이념적 동기가 아닌 민족적 양심"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는 측은 특히 손선호 하사의 "30만 제주 도민을 위한 거사"라는 항변과 문상길 중위의 "미군의 군대가 아니라 진정한 조선의 군대가 되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인용하며, 이들의 죽음을 "비극적 시대 상황 속에서 군인의 본분과 인간의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다 파멸한 젊은이들의 초상"으로 묘사하며 일종의 '의거'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박진경 암살 사건을 "남로당 지령 문건의 실체"를 통해 "의거가 아닌 정치 테러"로 규정하는 측은 1949년 국군이 노획한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를 "스모킹 건"으로 제시하며, 박진경 암살이 "남로당의 치밀한 기획"이었고 "문상길 중위는 단순한 부하가 아니라 남로당의 군 내부 책임자급 프락치였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암살의 목적 또한 박진경이 추진하려 했던 군 내부 "숙군" 작업에 대한 위기감과 "남로당 조직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며, 이들이 내세운 "도민 보호"는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했다고 단언한다.
더 나아가 박진경의 암살은 오히려 미군정과 국군에 "극도의 불신감"을 안겨주어 이후 "더욱 가혹하고 무차별적인 토벌 작전을 수행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며, 이는 도민을 구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재앙을 불러왔다"는 비판적 해석을 내놓는다.

두 진영의 이러한 시각차는 암살이라는 행위의 정당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에 덧붙여 대통령까지 나서 박진경 대령의 서훈 및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하라는 지시는 상반된 역사 인식의 첨예한 충돌 지점이다.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시도라지만, '법적 정의'(절차적 정당성)라는 벽에 부딪혔다.
이는 과거사 청산이 단순한 정치적 선언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정교한 법리적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처럼 박진경 대령을 둘러싼 논란은 단지 한 개인의 명예 회복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건국 과정의 정통성, 초기 국가 공권력의 성격, 그리고 억울한 민간인 희생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복잡한 질문들을 내포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두 진영은 각기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사료를 선택적으로 해석하거나, 특정 증언의 신뢰도를 높이거나 깎아내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77년 전의 비극적인 사건이 여전히 '팩트'와 '진실'의 영역에서조차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진영 논리'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역사적 화해와 통합은 진영 논리를 넘어선 성찰에서 시작된다. 보수는 박진경의 과오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진보는 당시의 혼란했던 안보 상황을 도외시하려 한다는 지적처럼, 양측의 경직된 태도는 진실을 파편화시키고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다.

남해 군민들에게도 이제는 치유와 통합을 향한 용기 있는 발걸음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미화나 악마화는 비극적 시대를 살아간 개인들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담아낼 수 없다.
남해군에 조성된 박진경 대령 동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과거사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현재적 갈등을 투영하는 상징이 되었다. 이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그 갈등의 원인을 직시하고 함께 대화하며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 남해문학회와 일부 진보성향의 군민을 비롯한 외부 참여 인사들을 중심으로 고(故) 정을병선생의 흉상이 '군민동산'에 설치된 바 있다.
그가 남겼던 "남해사람들에겐 왜놈의 피가 흐른다."는 망언에 대한 완전한 군민들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심도 있는 공론화의 과정 없이 세월의 흐름 속에 묵시적 용인이 이루어진 셈이다.
궁극적으로는 박진경을 '비극적 시대의 모순을 체화한 인물'로 기록하고, 이 복잡한 서사를 공론화하며,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는 과정을 선행하여 사실에 입각한 역사의 진정한 진실로 '해원(解寃)'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박진경 대령의 암살범 손선호가 꿈꾸었던 "민족을 위하여 싸우는 국방군"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박진경 논란을 통해 우리 군과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삼는 군대, 그리고 이념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역사관의 확립이다. 남해의 박진경 동상은 바로 이러한 치열한 성찰과 통합의 여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역사적 평가가 끝난 후에야 존치하여 그의 공적을 기려야 할 것인지, 철거하여 잘못된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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