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이태인, 홍성진 기자
발행연월일 : 2026년 04월 10일(금)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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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FM공동체라디오와 남해미래신문은 지역 공동체와의 진솔한 소통을 위해 특집방송 [남해인 초대석]을 진행했다. 이번 [남해인 초대석]은 후보자의 차가운 공약이나 날카로운 정책 대결의 장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사가 지닌 깊은 무늬와 그 내면에 숨겨진 인간적인 온기를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공인으로서의 외면적 모습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한 시대, 한 세대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자 함이다. 공통 주제인 남해에 대한 기억과 남해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역사회를 훈훈하게 만들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심어주길 기대한다. 이번 기획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의 역할을 넘어,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는 소중한 소통의 시간이길 바랄 뿐이다. <편집자 주>
스튜디오의 조명 아래 앉은 이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남해군수 출마를 준비 중인 류성식 예비후보였다.
평소 냉철한 행정가이자 성공한 경영인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그였지만, 이날만큼은 한 사람의 아들이자, 사위이며, 남해의 흙을 밟고 자란 평범한 이웃으로서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60분간 이어진 그의 고백은 단순한 인터뷰를 넘어, 고난을 딛고 일어선 한 남자의 치열한 생존기이자 사랑의 기록이었다.
[고향의 기억] 바지개(지게)와 이순신 장군이 심어준 '책임의 뿌리'
류성식 후보의 인생 서사는 1964년 설천면 금음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 뒤편의 웅장한 푸른 산과 앞마당처럼 펼쳐진 강진만의 푸른 바다는 소년 류성식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주었다.
그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내 몸집만 한 바지개(지게)를 지고 산에 올랐다"고 말했다.
산에서 나무를 해오고, 소꼴을 베며 자연의 순리를 몸소 체험했던 시간들. 그에게 고향은 단순히 태어난 곳이 아니라 '성실함'이라는 근육을 단련시킨 훈련장이었다.
특히 그는 마을 형들과 어울리며 항상 막내 역할을 했던 시절을 소중하게 기억했다.
"4~5살 터울의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세상을 일찍 배웠습니다. 형들의 심부름을 하고 함께 산등성이를 누비며, 나보다 앞선 이들을 존중하는 법과 내게 맡겨진 짐을 끝까지 책임지는 법을 익혔죠." 이러한 기질은 훗날 그가 어떤 조직을 맡든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정신적 지주는 설천 노량에 서려 있는 이순신 장군의 순국 정신이라고 소개했다.
류성식 후보는 이순신 장군의 승리를 '기적'이 아닌 '철저한 준비의 산물'로 해석했다.
"장군의 23전 23승은 백성을 향한 지극한 사랑과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책임감이 만든 결과입니다.
저 역시 남해인의 후예로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내가 이 짐을 지지 않으면 누가 지겠는가'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잡습니다."그의 마음속 아지트인 대국산성은 지난 26년간 그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찾았던 자신의 성소다.
"새벽 일출과 저녁 노을을 보며 산성 위에 서면, 남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곳에서 바람 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잠기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내가 가야 할 길이 선명해지곤 합니다."
[인생의 파도] 얼어붙은 청춘, '셋째 아들'에서 '장남'이 된 사연
남해의 바다가 늘 잔잔할 수 없듯, 그의 청춘에도 감당하기 힘든 거센 파도가 들이닥쳤다.
중학교 시절, 그는 청천벽력 같은 사고로 두 형님을 연이어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고 한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두 형님을 동시에 잃은 상실감은 소년의 세계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특히 시각장애 1급으로 오직 자식의 앞날만을 등불 삼아 살아오신 부모님의 소리 없는 오열을 보며, 그는 사춘기의 방황조차 사치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비극의 현장에서 그는 울음을 삼키며 스스로 어른이 되기를 선택했다.
"그때 제 마음속에 깊이 새긴 다짐은 단 하나였습니다. '내가 무너지면 우리 집은 끝이다.
내가 지탱해야 한다.' 그날 이후 저는 셋째 아들이 아닌, 부모님을 모시고 집안을 일으켜야 할 실질적인 장남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가장 자유롭고 빛나야 할 사춘기에 그가 마주한 것은 상실의 아픔과 생존의 무게였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는 대신, 형님이 남기고 간 어린 조카들을 품에 안았다.
"누군가에게는 힘들 때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얼마나 절실한지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러한 시련은 그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정치인으로 성장시켰으며,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강철 같은 책임감'을 그의 영혼에 각인시켰다.
[가치와 인연] 23년의 동행, 장모님과 '정든 식당' 누님이 준 선물
류 후보의 인간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효(孝)'다. 그는 자신이 직접 집필한 책 '효자 애일(孝子 愛日)'을 통해 장모님과의 특별한 인연을 공개했다.
그는 홀로 계신 장모님을 설득해 2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집에서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장모님이 9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사위라는 이름보다 '막내아들'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곁을 지켰다.
특히 2015년 조합장 선거 당시의 에피소드는 듣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선거를 앞두고 병상에 누워계시던 장모님께서 제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밤 사위의 득표수가 당신의 머리카락 숫자만큼 나오게 해달라고 비신다는 겁니다." 류 후보는 이 대목에서 목이 메어 잠시 방송을 중단해야 했다. 그 눈물에는 23년 세월을 함께한 장모님에 대한 애틋함과, 그 사랑을 바탕으로 더 큰 책임을 다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가족만큼이나 깊은 인연은 설천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든 식당' 누님이라고 소개했다.
아버지가 수양딸로 삼을 만큼 가깝게 지냈던 그녀는, 류 후보의 집안이 가장 힘들었던 고비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손을 내밀어주었다고 한다.
"누님은 제 인생의 은인입니다. 그 따뜻한 밥 한 끼와 격려의 말 한마디가 저를 오늘날 이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 류 후보가 방송 중 신청한 임영웅의 '이제 나만 믿어요'는, 그가 사랑하는 가족과 은인들, 그리고 남해 군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약속과도 같았다.
[성찰과 소신] 남해라는 현장에서 찾은 '생활 애국'의 길
새남해농협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며 탁월한 경영 능력을 입증했던 류 후보는, '애국'이라는 단어를 거창한 구호가 아닌 '일상의 실천'으로 정의한다.
그는 한때 '중앙 무대에서 활동해야 진정한 나라 사랑인가'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답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남해의 흙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국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나를 믿어주는 이들을 위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 바로 애국입니다." 이러한 소신은 그가 전국에서 유례없는 '농민 훈장' 수여 제도를 도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평생 흙을 일구며 정직하게 살아온 농민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문화를 만드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행정의 본질이었다.
그는 가슴이 답답하거나 판단이 흐려질 때면 다시금 남해의 산과 들을 걷는다고 소개했다. 자연의 품에서 "조급해하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금 단단한 다짐을 품는다. 그에게 성찰은 멈춤이 아니라, 더 힘차게 내딛기 위한 준비 운동이다.
[미래와 유산] '열정적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남해의 아들
방송의 막바지, 진행자 김나현 씨가 "군민들에게 어떤 '형용사'로 기억되고 싶으냐"고 묻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답했다.
단순히 뜨겁기만 한 열정이 아니라,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을 맺고, 한 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소중히 여기는 '책임감 있는 열정'을 말한다.
"류성식이라는 이름 앞에 붙이고 싶은 형용사는 오직 '열정적인' 하나입니다.
열정으로 시작해 책임으로 완성하는 사람, 군민들이 힘들 때 가장 먼저 달려가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참 일 잘하는 열정적인 남해 사람'이라는 소박하지만 묵직한 평가를 받기 위해 오늘도 남해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하려는 말보다 결과로 보여주겠노라 약속했다. 낮은 자세로 군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화려한 약속보다는 손에 잡히는 실천으로 신뢰를 쌓겠다는 것이다. 류 후보는 마지막 신청곡으로 BTS의 'Swim'을 선택했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수영선수처럼, 남해의 미래를 위해 어떤 난관도 돌파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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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금) 16: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