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남해 유자에서 시대의 아픔을 읽다
남해 유자에 스민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의 『영유시(詠柚詩)』 20수를 따라
선비의 절개와 애민정신, 그리고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겨 본다.
유배지 남해에서 피어난 『영유시(詠柚詩)』를 따라가며 유자(柚子) 한 알에 담긴 역사와 문학,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오늘을 비추는 인문학의 깊은 울림을 되새겨본다
남해미래신문
발행연월일 : 2026년 07월 16일(목)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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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명재상이자 문장가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의 삶은 영광과 시련이 교차한 여정이었다. 그는 효종(孝宗)·현종(顯宗)·숙종(肅宗) 대에 걸쳐 국정을 이끈 대표적인 대신으로, 권세에 영합하기보다 옳다고 믿는 바를 굽히지 않고 직언한 강직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성품은 여러 차례 귀양이라는 혹독한 시련으로 이어졌으며,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유배지가 경상도(慶尙道) 남해(南海)이다. 숙종 5년(1679), 남인(南人) 세력의 횡포를 상소한 그는 정치적 갈등 끝에 절해고도(絶海孤島) 남해로 유배되었다. 중앙 정계의 중심에 있던 그는 하루아침에 변방의 유배객이 되었다.
남해미래신문은 남해, 잊혀져 가는 우리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 재발견 재발굴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추적,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에 기꺼이 뜻을 모아 그간 함께한 연구를 지면으로 소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전 남해해성고· 전 창선고 최성기 교장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한다. <편집자 주>
『약천집(藥泉集)』에 따르면 유배 초기에는 병환까지 겹쳐 오랫동안 몸을 추스르지 못했고, 낯선 풍토와 고독한 생활 속에서 깊은 절망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남해는 그에게 단순한 귀양살이의 공간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는 유자나무는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지며 삶을 성찰하게 했다.
그는 망운산(望雲山)과 금산(錦山)에 올라 부모를 향한 효심과 임금을 향한 충절을 되새기고, 드넓은 다도해를 바라보며 선비의 뜻을 더욱 굳게 다졌다.
무엇보다 차가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지키고 황금빛 열매를 맺는 유자나무는 역경 속에서도 절개를 잃지 않는 군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유자(柚子)에 자신의 삶과 시대를 비추며 조선 후기 한시 문학을 대표하는 연작 『영유시(詠柚詩)』 20수를 남겼다.
유배는 정치가에게는 좌절이었지만, 문인에게는 인간과 자연, 백성의 삶을 깊이 성찰하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 『영유시(詠柚詩)』에 담긴 선비 정신과 시대의 성찰
『영유시(詠柚詩)』는 단순히 유자(柚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이 아니다.
모두 20수로 이루어진 이 연작은 자연을 매개로 인간의 삶과 정치, 그리고 백성의 현실까지 함께 성찰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영물시(詠物詩)이다.
『약천집』에 실린 서문에는 탄생 과정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깊어가는 가을밤, 병든 몸과 쇠약해진 시력 때문에 책조차 읽지 못하던 그는 벗 하나 없는 유배지에서 긴 밤을 뒤척이다 마당의 유자나무를 바라보게 된다.
적막한 마음을 달래려 한 수 두 수 읊기 시작한 시(詩)는 어느새 스무 편의 연작으로 이어졌다. 그는 "시를 잘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료함을 잊기 위해 썼다."라고 했지만, 그 결과는 조선 후기 한시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남았다.
사계절 푸른 잎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는 변함없는 절개를, 한겨울에도 향기를 간직한 열매에서는 군자(君子)의 덕을 읽었으며, 황금빛 빛깔에서는 중용(中庸)의 정신과 인격의 품격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중국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귤송(橘頌)」에서 귤나무를 충절의 상징으로 노래한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영유시(詠柚詩)』의 진정한 가치는 자연 예찬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황금빛 열매 뒤에 가려진 백성들의 고단한 삶과 공납제도(貢納制度)의 모순을 함께 바라보았다. 왕실의 진상품(進上品)이었던 유자는 농민들에게는 무거운 부담이 되었고, 향기로운 과실은 오히려 수탈과 고통의 상징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선비의 절개(節槪)와 애민(愛民) 정신을 한 편의 시 속에 함께 담아냈다.
이처럼 『영유시』는 자연을 노래한 문학인 동시에 조선 후기 민생을 증언한 역사 기록이며, 권력과 백성의 관계를 성찰한 사회 비평 문학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유자 한 알에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도리를 함께 담아낸 그의 시선은 35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깊은 울림을 전하며,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유자 향기 뒤에 숨은 공납(貢納)의 비극
『영유시(詠柚詩)』가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되는 까닭은 유자를 군자의 상징으로만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은 유배객의 시선으로 남해 백성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황금빛 열매 뒤에 감춰진 현실을 시와 산문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 기록은 당시 공납제도(貢納制度)가 민생에 어떤 고통을 안겼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 자료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남해의 유자는 왕실에 바치는 대표적인 진상품이었다. 지방의 특산물을 국가에 바치는 공납은 본래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제도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각종 폐단이 쌓였다.
특히 귀한 특산물일수록 관리들의 수탈은 심해졌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전가되었다. 『영유시』 제15수의 서문에는 당시의 실상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관청은 유자나무마다 열매 수를 일일이 조사해 장부에 적었고, 바람에 떨어지거나 새가 쪼아 생긴 손실까지 백성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부족한 수량은 다른 곳에서 비싼 값에 구입해야 했으며, 운반 비용과 아전들에게 드는 각종 경비까지 모두 농민의 몫이었다.
이처럼 많이 수확할수록 부담이 커지는 모순 속에서 풍년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었다.
결국 농민들은 가족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가꾼 나무에 스스로 불을 놓거나 도끼를 들어 베어낼 수밖에 없었다.
약천藥泉)은 이를 단순한 농촌의 어려움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중국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를 인용하며, 탐관오리의 수탈이 백성들에게 귀한 과실마저 미워하게 만든다고 탄식하였다.
아름다운 자연이 인간의 탐욕 때문에 고통의 원인이 되고, 나라의 자산이 되어야 할 유자림(柚子林)이 오히려 제도의 폐해로 사라지는 역설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훗날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탐진촌요(耽津村謠)』와도 맥을 같이한다. 정약용 역시 강진 유배 시절, 밤마다 백성들이 유자나무를 찍어내는 도끼 소리를 들었다고 적었다.
시대와 지역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같은 현실을 목격했고, 같은 아픔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는 공납제도의 폐해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 모순이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언이라 할 수 있다.
△ 절개보다 먼저 백성을 바라본 애민정신(愛民精神)
유배 문학은 흔히 자신의 억울함과 외로움을 토로하는 기록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의 『영유시(詠柚詩)』는 그 결이 다르다. 그는 자신의 시련을 길게 하소연하기보다 자신보다 더 고단한 백성들의 삶을 먼저 바라보았다.
제15수와 제16수에서는 유자나무가 사라지는 원인을 백성의 무지에서 찾지 않고, 과도한 공납과 탐욕스러운 관리들의 수탈이라는 제도적 모순에서 찾았다. 농민들이 평생 가꾼 나무를 스스로 베어야 했던 현실을 기록하며 문제의 책임은 사람보다 제도와 행정에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어 관청 앞 유자나무가 관리들의 무관심 속에 말똥과 오물에 묻혀 고사하는 모습을 전하며, 한때 귀하게 보호받던 나무가 방치되는 현실을 보며 "옛사람만 못하다."라고 탄식하였다. 이는 자연을 돌보지 않는 행정이 결국 공동체의 미래까지 훼손한다는 사실을 일찍이 통찰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에게 유자는 단순한 과실이 아니라 백성의 생계이자 지역의 문화였으며,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삶의 자산이었다.
따라서 유자나무를 지키는 일은 곧 백성을 지키는 일이며,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신념이 작품 전반에 흐른다. 이러한 인식은 조선 후기 실학자(實學者)들이 강조한 민본(民本)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이를 추상적인 정치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고, 유자 한 그루가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더욱 깊은 설득력으로 보여주었다.
바로 이 점에서 『영유시(詠柚詩)』는 군자의 절개를 노래한 영물시를 넘어, 백성을 향한 애민(愛民)의 정신과 공동체의 가치를 담아낸 사회 비평 문학으로 높이 평가된다.
35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 작품이 변함없는 울림을 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자연을 통해 시대를 읽다,『영유시(詠柚詩)』의 인문학적 가치
『영유시(詠柚詩)』는 공납제도의 폐해를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은 유자라는 한 가지 자연물을 통해 인간과 자연, 정치와 사회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연작은 단순한 영물시(詠物詩)를 넘어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공동체의 질서를 성찰한 인문학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연작의 후반부에서는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인용하여 유자가 소화를 돕고 담을 없애며 목을 맑게 하는 효능을 지녔다고 소개하지만, 그의 관심은 약효 자체에 있지 않았다.
왜 남쪽의 덥고 습한 땅에서 유자가 잘 자라는지를 묻고, 자연은 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는 질서 속에서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추운 지방에는 한기(寒氣)를 이겨낼 동물이, 더운 지방에는 더위를 견디게 하는 식물이 자란다는 그의 인식은 오늘날의 생태학적 관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통찰로 읽힌다.
그에게 유자나무는 단순한 과수(果樹)가 아니었다. 백성의 삶을 지탱하는 생계의 터전이자 선비의 절개를 일깨우는 스승이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소중한 생명체였다.
이러한 자연관은 오늘날 환경 보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논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깊은 의미를 지닌다. 그는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훼손하면 그 결과는 결국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하였다.
공납의 폐해가 울창한 유자림을 사라지게 했듯이, 무분별한 개발과 끝없는 욕심은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한다.
『영유시』는 350여 년 전에 이미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가치를 문학으로 형상화한 선구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남해(南海) 유자와 『영유시』가 남긴 문화유산
오늘날 남해를 찾으면 여전히 유자를 지역의 대표 특산물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이 유배 시절 바라보았던 울창한 유자림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시대의 변화와 산업 구조의 전환, 농촌의 고령화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재배면적과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영유시(詠柚詩)』는 유자를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조선 후기의 정치와 사회, 문학과 사상을 함께 담아낸 역사 문화 자산으로 승화시켰다. 이제 남해 유자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약천(藥泉)을 떠올리게 되고, 그의 시(詩)를 읽으면 지역의 역사와 백성들의 삶까지 함께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축적된 인문학적 가치는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영유시』와 유배 생활을 중심으로 역사 문화 탐방길을 조성하고, 약천의 발길이 머문 향교와 용문사, 곡포(화계), 난포(난음), 망운산, 금산, 유자 재배지를 잇는 인문 관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면 남해만의 독창적인 문화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특산물을 단순한 먹거리로 소비하지 않고 유자에 담긴 역사와 문학, 삶의 이야기를 『영유시』와 함께 전한다면 지역 브랜드의 품격도 높아질 것이다.
소비자는 과실 한 상자가 아닌 남해의 역사와 문화, 약천(藥泉)이 남긴 정신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과거의 이야기를 오늘의 삶과 연결할 때 비로소 살아난다.
그런 점에서 『영유시』는 남해 유자의 역사성과 지역의 인문 정신을 담은 대표적 인문학 유산으로, 앞으로도 세대를 이어 전승할 소중한 문화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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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의 향기가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은 유배지에서 유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절개를 다짐했지만, 시선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향기로운 열매 뒤에 숨은 백성들의 눈물을 읽어냈고, 아름다운 자연 이면에 자리한 제도의 모순을 기록하였다.
그래서 『영유시(詠柚詩)』는 자연을 예찬한 영물시를 넘어 권력의 책임을 묻고, 백성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으로 남았다.
공납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국가와 행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제도와 정책이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배객의 처지에서도 자신의 억울함보다 민생을 먼저 살폈던 그의 시선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작품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품격 또한 조용히 일깨운다. 참된 지도자는 개인의 영달보다 공동체를 앞세우고, 눈앞의 이익보다 오래 지속될 가치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그는 권세는 잃었지만, 양심만은 끝내 지켜냈으며, 역경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절개(節槪)와 애민(愛民)을 하나의 삶으로 실천하였다. 겨울 추위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유자처럼 그의 정신 역시 세월을 넘어 살아남았다.
급속한 변화와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영유시』는 조용하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권력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공동체를 오래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 지도자의 품격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남해산 작은 유자 한 알은 350여 년의 시간을 건너 그 물음에 말없이 답하고 있다. 향기는 언젠가 사라지지만, 향기를 품은 사람의 정신은 시대를 넘어 오래 남는다.
약천(藥泉)이 남긴 것은 유자를 노래한 시편이 아니라 자연을 사랑하고 백성을 아끼며 끝내 양심을 지켜낸 한 선비의 삶이었다. 그 향기는 지금도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조용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일깨워 주고 있다.
□ 추기(追記)
글을 맺으며 남해 출신 고두현 시인의 「늦게 온 소포」를 떠올려 본다.
이 시(詩)에서 남해산 유자는 단순한 겨울 과일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과 고향의 정, 그리고 삶을 견디게 하는 위로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정성껏 싸 보낸 몇 알의 유자에는 자식을 향한 그리움과 염려, "몸만 성히 추스르라."는 어머니의 평생 기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쪽 바다의 바람과 햇살을 머금고 익은 노란 열매는 추운 겨울에는 몸을 녹이는 차가 되고, 타향살이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가 되며, 가족을 이어주는 소중한 기억으로 오래 남는다.
오늘날 남해 유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자 세계인이 찾는 건강식품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진정한 가치는 뛰어난 효능이나 상품성보다 한 알에 스며있는 정성과 사람 냄새, 그리고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따뜻한 마음에 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더욱 짙어지는 향기처럼 사람의 삶도 수많은 계절을 견디며 깊이를 더해 간다.
사랑과 배려, 인내와 기다림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그윽한 향기로 남는다. 남해의 겨울 바다와 들녘을 바라보며 노랗게 익어 가는 유자를 떠올려 본다. 그 향기는 오늘도 우리에게 삶의 풍요는 많이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나누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그래서 남해산 유자는 지금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향기로운 선물이자,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고향의 가장 따뜻한 안부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 약천 남구만의 藥泉集第二 [詩 - 詠柚詩 二十首 幷序
歲己未. 承恩譴配巨濟移南海. 及秋深夜長. 眠睡益少而氣素羸弱. 眼且昏?. 不能曉燈讀書. 輾轉枕席. 無與晤語. 因作詠柚詩. 疊韻成二十首. 非以爲詩. 聊自遣意耳. 此地環海斥鹵. 草無蘭蕙. 樹無椒桂. 如欲飮芳而餐馨. 佩芬而服香. 捨此柚何以. 噫. 柚雖一微物. 比興之體. 遠邇之義. 亦可於此乎推之. 意之留連而不已. 言之煩複而不?者. 有以也夫.
1) 八月食柚子猶靑. 書示學子河?, 朴殷輅.
八月南州秋事遲. 海山珍果尙靑皮. 還能??噴香霧. 已看盈盈孕嫩肌. 林下愧先蘇子食. ?中遙擬屈平師. 因玆更欲求人物. 誰是區生未學時.
2) 九月行過前村. 見黃熟者.
馬過前村策故遲. ?緣貪賞老香皮. 山?洗出黃金面. 海旭烘成白玉肌. 野外疑登荀令坐. 林間驚遇子房師. 知渠風味應同橘. 自愧吳兒懷袖時.
3) 入龍門寺見登盤者
霜後紺園圓滿遲. 前身大聖渾金皮. 苦求上證常懸體. 喜捨諸方且割肌. 鼻嗅呼來檀行者. 眼開參見檗禪師. 修成正果知何日. 會待蜂王獻蜜時. 俗稱蜜漬果?者曰正果
4) 入曲浦堡. 見客舍庭前在樹者.
曲浦城邊去復遲. 層枝欣見飽霜皮. 金鱗鎖甲爭寒色. 玉帳佳人妬馥肌. 桃已讓多寧殺士. 梅還羞有不欺師. 能敎樹下無行迹. 始識將軍號令時.
5) 過蘭浦. 見神祠庭前靑黃相雜者.
叢祠爲汝更遲遲. 雜?靑黃燦錦皮. 桂酒椒?推爽味. 蕙肴蘭藉遜柔肌. 光輝弄日侵靈座. 芬馥隨風襲女師. 今我題詞追楚客. 祀神須唱送迎時.
6) 入文廟見滿庭蔥鬱者
夫子宮牆晩景遲. 繞庭佳實爛黃皮. 還如古杏垂壇影. 不比夭桃雪黍肌. 入室芝蘭皆益友. 後凋松柏?嚴師. 臨風三嗅仍多感. 一?要尋上剝時.
7) 過北村見鄭生家樹有感
村舍相逢步?遲. ?黃誰遣漆成皮. 飛霜拂葉還生色. 宿霧沈枝且潤肌. 種橘有心懷井水. 獻芹無路望京師. 馨香在手如芳杜. 采采逍遙薄暮時.
8) 寓舍手弄有感
愛此團圓放手遲. 輕摩且恐爪傷皮. 曾蒙夏禹包金殼. 不被楊妃汚雪肌. 色占中央知最正. 香同一瓣可稱師. 隨人貴賤還憐汝. 羅?筠籠各有時.
9) 望見前林方好熟玲瓏者
秋晩前林景物遲. 連枝騈結大圓皮. 高風金鑄?夷像. 爽氣氷凝姑射肌. 縱道滋榮因地力. 也知蕃碩賴園師. 羈愁對汝頻消遣. 最愛玲瓏夕照時.
10) 隣翁携贈一籠
野人携贈入門遲. 百顆盈箱?竹皮. 經夏秋冬方得 a131_440a熟. 兼香色味好成肌. 正同甘橘封千戶. 不似葡萄病貳師. 深荷知吾親在遠. 撫摩披謝獨多時.
11) 追憶丙申冬宣政殿 御前宣賜有感
宣政從容退食遲. 君王親賜錦包皮. 盈盤磊落光搖目. 滿袖提携馥透肌. 戀德本非爲汝美. 追愆今可作吾師. 還憐受命難移性. 頗似湘潭頌橘時.
12) 隣人有以初結自落者?乾爲冠纓
?結先零不少遲. 堅姿已似老犀皮. 雖無玉佩?鳴響. 且比珠纓細鑽肌. 落帽自宜防醉客. 正冠端合對尊師. 規模簡古人休笑. 好嗅芬芳著?時.
13) 又有?乾爲棋子者
怪玆爪甲歇芳遲. 緣撫楸枰一槁皮. 死久猶香眞俠骨. 年多不化定僊肌. 縱然未作盤中薦. 聊爾仍成局上師. 用舍在人非在汝. 柳州遺序感斯時.
14) 曾聞叔父竄珍島時. 細切柚子皮. 合梨實鰒魚爲?. 風味超然. 非煙火中人所可食者云. 余亦效而爲之. 停箸有感.
橫海鯨魚釣出遲. 呼兒聊使膾芳皮. 仍裁細縷霜梨肉. 且割輕絲石鰒肌. 二客從時方可樂. 三人行處孰爲師. 曾陪阿父聞玆法. 擧箸還停歎久時.
15) 聞土人言. 數十年前村家柚樹. 處處成林. 每於秋冬之際. 黃色耀林. 望如雲錦. 邇間村民有柚樹者. 自官成籍. 秋熟時遣吏逐樹點數而收之. 民旣多供吏之費. 且有納官之勞. 至或點數後有因風搖落者. 則不免他買而益之. 以充其數. 故除官吏品官稍有力勢者外. 凡下戶小民則皆燒根斫株. 以絶其弊. 以此種柚家比前殆減十之七八云. 余聞而傷之. 此正子美詩邦人不足重. 所迫豪吏侵者也. 欲以聞於處民上者而不可. 因成獨謠.
千奴栽得十年遲. 何事燒根且斫皮. 不獨茶綱招邑怨. 從來橘稅割民肌. ?殘似遇猜桃女. 荒廢眞成養棘師. 我聽此言心惻惻. 風淳物阜在何時.
16) 邑人云前日縣衙軒前. 柚樹甚盛. 結實蕃碩. 雖在深冬. 張?以防霜雪. 則可經歲不落. 爛熟之久. 美味絶勝於他. 甚可珍也. 近間作馬廐於其側. 糞穢蝕根. 枯死且盡云. 昔子瞻於萬松亭. 傷來者之不嗣其意. 有好德無人助我儀之句. 余亦感此衰盛. 吟以自遣.
除雖容易養曾遲. 歎息官園?地皮. 但見連槽騰駿骨. 更無張?護香肌. 今人不及古人遠. 前事誰敎後事師. 東閣亦曾爲馬廐. 從來物盛有衰時.
17) 本草曰柚子去胃中惡氣. 此可知其性味之良. 而今聞土人言. 除濕痰勝?氣. 毋踰於柚子. 因此推之. 天之生物. 必有相參而相制. 損之極處. 益之者隨. 害之甚處. 利之者存. 是以?貂厚?. ?於慘冽之地. 而得之以禦寒. 椰子檳?. 生於酷熱之方. 而賴之以解暑. 今以??之鄕. 又有此衛生之珍果. 夫豈偶然者哉. 有感於此. 漫又一吟.
蟠桃海外苦來遲. 自有園中好實皮. 激齒淸泉驚滌胃. ?喉香霧暗滋肌. 佳名已載神農筆. 妙用今聞採藥師. 必使?鄕生此物. 天心仍可認玆時.
18) 遯齋詩話云. 凡詠梅多詠白. 而荊公詩獨云鬚撚黃金危欲墮. ?團紅蠟巧能粧. 不惟造語巧麗. 可謂能道人不到處矣. 今柚非但其實可貴. 其樹亦多可稱者. 而爲實所掩. 人無道之者. 漫又效嚬荊公詠梅. 雖文妙不及. 亦不欲但以狀物爲巧也.
鬱鬱成林晩色遲. 綠雲爲葉碧銅皮. 刺多不許來蟲鳥. 壽久還應鍊骨肌. 淡素花如文少相. 堅貞枝比節高師. 更憐孤竹相隣近. 一體靑靑貫四時.
19) 柚之於橘. 其類一也. 書經孔氏注. 大曰柚. 小曰橘. 本草曰果之美者. 有雲夢之柚. 橘則乃以洞庭稱焉. 豈雲夢洞庭之間. 亦有土宜之別耶. 此地有柚而無橘. 其香色氣味. 雖不得同盤而鬪品. 小固不可以敵大. 旣得其大者. 遺其小亦可也.
開花無早熟無遲. 比橘唯分大小皮. 美味素稱雲夢實. 珍名何但洞庭肌. 鄒人戰楚終難勝. ?國行王只作師. 窄地尙聞容二?. 廣居吾欲訪今時.
20) 順天許生?冬後來訪. 袖中携贈八柚. 感其自陸入島. 吟以遣意.
昇平客子到何遲. 袖裏携來八老皮. 路涉艱難猶好面. 節當寒瘦尙?肌. 曾非入海求僊藥. 豈是乘?逐聖師. 此地亦多如汝輩. 獨憐流落撫移時.
?? 약천 남구만 藥泉集第二 [詩 - 詠柚詩 二十首 幷序 - 번역
歲己未.承恩譴配巨濟移南海.及秋深夜長.眠睡益少而氣素羸弱.眼且昏?.不能曉燈讀書.輾轉枕席.無與晤語.因作詠柚詩.疊韻成二十首.非以爲詩.聊自遣意耳.此地環海斥鹵.草無蘭蕙.樹無椒桂.如欲飮芳而餐馨.佩芬而服香.捨此柚何以.噫.柚雖一微物.比興之體.遠邇之義.亦可於此乎推之.意之留連而不已.言之煩複而不?者.有以也夫.
기미년(1679, 숙종 5)에 나는 성상의 명령을 받들고 거제도(巨濟島)로 유배 갔다가 남해(南海)로 옮겨 갔다. 가을이 깊어 밤이 길어지자 잠이 더욱 적어졌으며, 평소 기력이 허약한데 눈까지 어두워져서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전전반측하며 함께 말을 나눌 사람이 없기에 유자를 읊은 시를 지어서 첩운(疊韻)으로 20수를 이루었으니, 이것을 시라고 여겨서가 아니요, 애오라지 스스로 적적한 마음을 달랬을 뿐이다. 이 지역은 바다로 둘러싸여 염분이 많아 풀은 난초(蘭草)와 혜초(蕙草) 같은 것이 없고 나무는 천초(川椒)와 계수나무 같은 것이 없으니, 향기로운 것을 마시고 먹으며 향기로운 물건을 차고 입고자 한다면 이 유자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아, 유자는 비록 하찮은 한 물건이나 비흥(比興)의 체(體)와 멀고 가까운 뜻을 또한 여기에 미룰 수 있으니, 마음이 이끌려 차마 끊어버리지 못함과 말이 중복되는데도 삭제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1. 八月食柚子猶靑. 書示學子河?, 朴殷輅.
팔월에 유자를 먹으니 아직도 푸르므로 학생(學生) 하장(河?)ㆍ박은로(朴殷輅)에게 써서 보여주다.
팔월이라 남쪽 고을에 가을이 늦게 찾아오니 [八月南州秋事遲]
산해(山海)의 진귀한 과일 아직도 껍질이 푸르구나 [海山珍果尙靑皮]
역시 풍성하게 향기를 내뿜고 [還能??噴香霧]
차곡차곡 연한 살이 가득히 찼다오 [已看盈盈孕嫩肌]
숲 아래에서 소자처럼 먼저 먹음 부끄럽고 [林下愧先蘇子食]
영 땅 가운데 굴평 스승에게 멀리 견주노라 [?中遙擬屈平師]
이로 인하여 다시 인물을 구하려 하노니 [因玆更欲求人物]
그 누가 구생(區生)이 아직 배우지 않을 때인고 [誰是區生未學時]
2. 九月行過前村. 見黃熟者.
구월에 앞마을을 지나가며 노랗게 익은 것을 보다.
말 타고 앞마을 지나면서 일부러 채찍질 더디게 하니 [馬過前村策故遲]
이는 다만 노랗게 익어 향기로운 껍질 보고 싶어서라오 [?緣貪賞老香皮]
산의 안개비는 황금 같은 얼굴을 씻어 내고 [山?洗出黃金面]
바다의 햇볕은 백옥 같은 살을 만들어 내었네 [海旭烘成白玉肌]
들 밖에서 순령의 자리에 오른 듯하고 [野外疑登荀令坐]
숲 속에서 자방의 스승을 만났노라 [林間驚遇子房師]
그 풍미가 귤과 같음을 아노니 [知渠風味應同橘]
오나라 아이가 소매에 품었던 때에 부끄럽네 [自愧吳兒懷袖時]
3. 入龍門寺見登盤者.
용문사(龍門寺)에 들어가서 소반에 올라온 것을 보다.
서리 온 뒤 감원에는 둥근 것 드무니 [霜後紺園圓滿遲]
전신이 대성이라 온통 금가죽이라오 [前身大聖渾金皮]
상증을 구하느라 몸이 항상 매달려 있고 [苦求上證常懸體]
제방에 희사하느라 우선 자기 살을 베는구나 [喜捨諸方且割肌]
코로 맡으며 단행자를 불러오고 [鼻嗅呼來檀行者]
눈이 열리니 벽선사를 보았노라 [眼開參見檗禪師]
정과를 만드는 것이 어느 날인지 아는가 [修成正果知何日]
봉왕이 꿀을 바칠 때를 기다려야 한다오 [會待蜂王獻蜜時]
세속에서 꿀에 과일과 열매를 담근 것을 정과(正果)라고 칭한다.]
4. 入曲浦堡. 見客舍庭前在樹者.
곡포보(曲浦堡)에 들어가서 객사(客舍)의 뜰앞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다.
곡포의 성가를 다시 더디게 걸어가니 [曲浦城邊去復遲]
층층 가지에 서리 맞은 노란 껍질을 보기 위해서라오 [層枝欣見飽霜皮]
금비늘에 갑옷을 입으니 차가운 빛을 다투고 [金鱗鎖甲爭寒色]
옥장의 가인 향기로운 살을 시샘하네 [玉帳佳人妬馥肌]
복숭아가 많음을 사양하니 어찌 용사를 죽이랴 [桃已讓多寧殺士]
매화가 있음을 도리어 부끄러워하니 스승을 속이지 않네 [梅還羞有不欺師]
군사들에게 나무 아래에 다닌 흔적이 없게 하였으니 [能敎樹下無行迹]
장군의 호령이 얼마나 엄한지 알겠노라 [始識將軍號令時]
5. 過蘭浦. 見神祠庭前靑黃相雜者.
난포(蘭浦)를 지나다가 신사(神祠)의 뜰 앞에 푸른 것과 노란 것이 서로 섞여 있는 것을 보다.
총사에서 너 때문에 나의 발걸음 더뎌지니 [叢祠爲汝更遲遲]
푸른 것과 노란 것 섞여 있어 비단 껍질 찬란하네 [雜?靑黃燦錦皮]
계수나무 술과 천초(川椒) 음료도 상쾌한 맛을 양보하고 [桂酒椒漿推爽味]
혜초 안주와 난초 안주도 부드러운 살을 사양하리 [蕙肴蘭藉遜柔肌]
빛은 해를 희롱하여 영좌에 들어오고 [光輝弄日侵靈座]
향기는 바람 따라 여사에 스며드네 [芬馥隨風襲女師]
내 지금 글을 지어 초객을 따르노니 [今我題詞追楚客]
신에게 제사하여 맞이하고 보낼 때에 부를지어다 [祀神須唱送迎時]
6. 入文廟見滿庭蔥鬱者.
문묘(文廟)에 들어가서 뜰에 가득히 울창한 것을 보다.
부자의 궁장 저녁 햇빛이 늦은데 [夫子宮牆晩景遲]
뜰 가득히 아름다운 열매 노란 껍질 찬란하네 [繞庭佳實爛黃皮]
행단(杏壇)에 드리운 살구나무 그림자인 듯 [還如古杏垂壇影]
아름다운 복숭아 눈 같은 살과 비할 수 없네 [不比夭桃雪黍肌]
방 안에 들어오면 지초(芝草)와 난초 모두 유익한 벗이요 [入室芝蘭皆益友]
늦게 시드는 소나무와 측백나무 모두 엄한 스승이라오 [後凋松柏?嚴師]
바람에 임하여 세 번 냄새를 맡으매 감회가 많으니 [臨風三嗅仍多感]
한 획 모름지기 박괘(剝卦) 위에서 찾아야 하리 [一?要尋上剝時]
7. 過北村見鄭生家樹有感
북쪽 마을을 지나다가 정생(鄭生)의 집에 있는 나무를 보고 감회를 쓰다.
마을 집에서 서로 만나 발걸음이 더디니 [村舍相逢步?遲]
자황을 누가 보내어 껍질에 칠하였나 [?黃誰遣漆成皮]
날리는 서리 잎에 스치니 도리어 색깔이 나고 [飛霜拂葉還生色]
묵은 안개 가지에 스며드니 또 살이 윤택하네 [宿霧沈枝且潤肌]
귤을 심으려 하면서 우물물을 생각하고 [種橘有心懷井水]
미나리를 바칠 길 없어 서울을 바라본다오 [獻芹無路望京師]
향기로운 물건 손에 있어 방두와 같으니 [馨香在手如芳杜]
따고 또 따느라 저녁 무렵에 소요하노라 [采采逍遙薄暮時]
8. 寓舍手弄有感.
우거(寓居)하던 집에서 손으로 희롱하며 감회를 쓰다.
이 둥근 것 사랑스러워 손에서 놓지 못하고 [愛此團圓放手遲]
살며시 만지며 또 껍질을 상할까 두려워하노라 [輕摩且恐爪傷皮]
일찍이 하우씨(夏禹氏)가 금껍질을 쌌으니 [曾蒙夏禹包金殼]
양 귀비(楊貴妃)에게 하얀 살 더럽혀지지 않았네 [不被楊妃汚雪肌]
색은 중앙을 차지하니 가장 바름을 얻었고 [色占中央知最正]
향기는 한 줄기 향(香)과 같으니 스승이라 칭할 수 있네 [香同一瓣可稱師]
사람에 따라 귀해지고 천해지는 네가 가여우니 [隨人貴賤還憐汝]
나첩(羅帖)과 대바구니 각각 때가 있구나 [羅?筠籠各有時]
9. 望見前林方好熟玲瓏者.
앞 숲에 막 좋게 익어 영롱한 것을 보다.
가을이 깊으니 앞 숲에 경물이 드문데 [秋晩前林景物遲]
이어진 가지에 크고 둥근 껍질 맺혀 있네 [連枝騈結大圓皮]
고상한 풍채는 금으로 치이의 상을 주조(鑄造)한 듯 [高風金鑄?夷像]
상쾌한 기상은 얼음으로 고야의 살을 엉겨 놓은 듯하네 [爽氣氷凝姑射肌]
비록 잘 자람은 지력 때문이라 하나 [縱道滋榮因地力]
이처럼 무성함은 훌륭한 원예사가 있어서라오 [也知蕃碩賴園師]
너를 대하며 나그네 시름 자주 달래노니 [?愁對汝頻消遣]
저녁 해에 영롱하게 비칠 때가 가장 아름답구나 [最愛玲瓏夕照時]
10. 隣翁携贈一籠.
이웃 노인이 한 소쿠리를 가져다 주었다.
촌사람이 갖다 주며 문에 들어오길 주저하니 [野人?贈入門遲]
백 개를 상자에 가득히 대나무 껍질로 쌌구나 [百顆盈箱?竹皮]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야 비로소 익을 수 있고 [經夏秋冬方得熟]
향과 색과 맛을 겸하여 좋은 살을 이루었네 [兼香色味好成肌]
감귤이 천호에 봉해진 것과 같고 [正同甘橘封千戶]
포도가 이사를 병들게 한 것과는 같지 않다오 [不似葡萄病貳師]
나의 노친 멀리 계심을 알아줌이 고마우니 [深荷知吾親在遠]
어루만지며 오랫동안 특별히 감사해하노라 [撫摩披謝獨多時]
11. 追憶丙申冬宣政殿御前宣賜有感.
병신년(1656, 효종 7) 겨울에 선정전의 어전(御前)에서 선사(宣賜)하시던 것을 추억하여 감회를 쓰다.
선정전에서 조용히 물러나오니 [宣政從容退食遲]
군왕께서 친히 비단 보자기로 싼 감귤을 하사하셨다오 [君王親賜錦包皮]
소반에 가득히 쌓이니 광채가 눈부시고 [盈盤磊落光搖目]
소매에 가득히 넣어 오니 향기가 살 속에 스며들었네 [滿袖提?馥透肌]
덕을 사모해서요 본래 너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니 [戀德本非爲汝美]
잘못을 후회하매 지금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네 [追愆今可作吾師]
천명(天命)을 받아 본성을 옮기기 어려움 사랑하노니 [還憐受命難移性]
자못 상담에서 귤을 칭송할 때와 같다오 [頗似湘潭頌橘時]
12. 隣人有以初結自落者?乾爲冠纓.
이웃 사람들이 처음 맺혔다가 저절로 떨어진 것을 비벼 말려서 갓끈에 관자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맺히자마자 먼저 떨어져 조금도 지체하지 않으니 [?結先零不少遲]
단단한 자질 이미 오래된 무소 가죽과 같구나 [堅姿已似老犀皮]
비록 패옥(佩玉) 소리 쟁쟁히 울리지 않으나 [雖無玉佩?鳴響]
또 구슬 꿴 갓끈처럼 가늘게 구멍을 뚫었네 [且比珠纓細鑽肌]
모자가 바람에 날아갈 때 자연 취객을 지킬 수 있고 [落帽自宜防醉客]
갓을 바로잡으니 높은 스승을 대할 때 마땅하여라 [正冠端合對尊師]
규모가 작고 고졸(古拙)함 사람들 비웃지 마오 [規模簡古人休笑]
턱에 맬 때에 유자 향기가 참으로 좋다네 [好嗅芬芳著?時]
13, 又有?乾爲棋子者.
또 비벼 말려서 바둑알로 만든 것이 있었다.
손톱에서 향기가 오랫동안 피어남 괴이하게 여겼으니 [怪玆爪甲歇芳遲]
이는 추자나무 바둑판에 한 마른 껍질 어루만져서라오 [緣撫楸枰一槁皮]
죽은 지가 오래되어도 향기로우니 협객(俠客)의 기골이요 [死久猶香眞俠骨]
햇수가 오래되어도 변치 않으니 참으로 신선(神仙)의 살이로세 [年多不化定僊肌]
비록 소반에 올려지지는 못하였으나 [縱然未作盤中薦]
애오라지 바둑판 위에 스승이 되었네 [聊爾仍成局上師]
쓰고 버림 사람에게 달려 있고 너와는 무관하니 [用舍在人非在汝]
유주의 유서 이때에 감동하네 [柳州遺序感斯時]
14. 曾聞叔父竄珍島時. 細切柚子皮. 合梨實鰒魚爲?. 風味超然. 非煙火中人所可食者云. 余亦效而爲之. 停箸有感.
일찍이 들으니, 숙부께서 진도(珍島)로 유배 가셨을 때에 유자 껍질을 잘게 썰어서 배〔梨〕와 전복과 합하여 김치를 담았는데, 풍미(風味)가 뛰어나서 연화(煙火) 가운데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나도 이것을 본받아 김치를 만들고는 젓가락을 멈추고 감회를 썼다.
바다의 큰 고래 참으로 낚아 올리기 어려우니 [橫海鯨魚釣出遲]
아이 불러 아름다운 껍질 회를 만들라 하였네 [呼兒聊使膾芳皮]
인하여 하얀 배 살을 가늘게 썰고 [仍裁細縷霜梨肉]
또 전복 살을 실처럼 썰었다오 [且割輕絲石鰒肌]
두 손님이 따르는 때에 비로소 즐겁고 [二客從時方可樂]
세 사람이 가는 곳에 누가 스승이 되랴 [三人行處孰爲師]
일찍이 숙부를 모시고 이 방법 들었으니 [曾陪阿父聞玆法]
젓가락을 들었다 다시 멈추고 오랫동안 한탄하네 [擧箸還停歎久時]
15. 聞土人言. 數十年前村家柚樹. 處處成林. 每於秋冬之際. 黃色耀林. 望如雲錦. 邇間村民有柚樹者. 自官成籍. 秋熟時遣吏逐樹點數而收之. 民旣多供吏之費. 且有納官之勞. 至或點數後有因風搖落者. 則不免他買而益之. 以充其數. 故除官吏品官稍有力勢者外. 凡下戶小民則皆燒根斫株. 以絶其弊. 以此種柚家比前殆減十之七八云. 余聞而傷之. 此正子美詩邦人不足重. 所迫豪吏侵者也. 欲以聞於處民上者而不可. 因成獨謠.
이 지방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수십 년 전에는 마을의 집에 유자나무가 곳곳마다 숲을 이루어서 매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는 유자의 누런 빛이 숲에 찬란하여 바라보면 구름비단과 같았는데, 근래에 마을 백성 중에 유자나무가 있는 집이 있으면 관청에서 장부를 만들어 등재하고는, 가을철 유자가 익을 때에 아전을 보내어 나무마다 숫자를 세어 두었다가 거두어 갔다. 백성들은 이미 아전에게 바치는 비용이 많고 또 관청에 바치는 수고로움이 있으며, 심지어는 혹 숫자를 세어 간 뒤에 바람으로 인해 떨어진 것이 있으면 그 주인이 다른 곳에서 사다가 더 보태어서 그 숫자를 채워야 했다. 그러므로 관리와 품관(品官)으로서 다소 세력이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하호(下戶)와 백성들은 모두 유자나무 뿌리에 불을 놓고 나무 그루를 베어서 그 폐단을 없앴다. 이 때문에 유자나무를 심는 집이 예전에 비하여 십분의 칠팔 할이 줄어들었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서글퍼하였으니, 이는 바로 자미(子美)의 시에 ‘고을 백성들이 소중한 밀감을 중하게 여기지 않음은, 호리의 침해에 핍박받기 때문이라오.〔邦人不足重 所迫豪吏侵〕’라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백성의 윗사람된 자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으므로, 인하여 시를 지어 홀로 읊었다.
천 명의 종이 십 년 걸려 가꾸었는데 [千奴栽得十年遲]
무슨 일로 뿌리에 불 놓고 또 껍질에 도끼질하는가 [何事燒根且斫皮]
다강(茶綱)만 고을의 원망을 부르는 것 아니니 [不獨茶綱招邑怨]
예로부터 귤의 세금 백성들 살을 베어 갔네 [從來橘稅割民肌]
꺾이고 쇠잔함은 복숭아를 시기하는 여자 만난 듯하고 [?殘似遇猜桃女]
황폐함은 참으로 가시나무를 기르는 원예사가 되었구나 [荒廢眞成養棘師]
나는 이 말을 들으매 마음이 몹시 서글퍼지니 [我聽此言心惻惻]
풍속이 순박하고 물건이 풍성함 어느 때에나 기대할꼬 [風淳物阜在何時]
16. 邑人云前日縣衙軒前. 柚樹甚盛. 結實蕃碩. 雖在深冬. 張?以防霜雪. 則可經歲不落. 爛熟之久. 美味絶勝於他. 甚可珍也. 近間作馬廐於其側. 糞穢蝕根.枯死且盡云. 昔子瞻於萬松亭. 傷來者之不嗣其意. 有好德無人助我儀之句. 余亦感此衰盛. 吟以自遣.
고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예전에는 고을의 아문(衙門)과 동헌(東軒) 앞에 유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열매가 매우 많이 크게 맺혔고, 비록 한겨울이라도 천막을 쳐서 서리와 눈을 막아주면 한 해를 지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유자가 익은 지가 오래되면 그 맛이 다른 것보다 월등히 좋아서 매우 진귀하게 여길 만하였는데, 근래에는 그 옆에다 마구간을 지어 말똥이 뿌리를 부식시켜서 유자나무가 말라죽어 장차 다 없어지려 한다.” 하였다. 옛날 자첨(子瞻)은 만송정(萬松亭)에서 후인(後人)들이 그 뜻을 계승하지 못함을 슬퍼하여 ‘덕을 좋아하여 내 모습 돕는 이 없다.〔好德無人助我儀〕’라는 시구가 있었으니, 나 또한 성하고 쇠함에 감동하여 시를 읊어서 스스로 마음을 달래는 바이다.
제거하기는 용이하나 기르기는 참으로 더디니 [除雖容易養曾遲]
관청의 동산 땅바닥을 깎아낸 것 한탄스럽네 [歎息官園?地皮]
다만 연이은 마구간에 날뛰는 준마(駿馬)만 보일 뿐 [但見連槽騰駿骨]
다시는 천막 치고 향기로운 살 보호하는 이 없다오 [更無張?護香肌]
지금 사람들은 크게 옛사람만 못하니 [今人不及古人遠]
예전의 일을 누가 후인들에게 본받게 할꼬 [前事誰敎後事師]
동각 또한 일찍이 마구간이 되었으니 [東閣亦曾爲馬廐]
예로부터 물건이 성하면 쇠할 때가 있다네 [從來物盛有衰時]
17. 本草曰柚子去胃中惡氣. 此可知其性味之良. 而今聞土人言. 除濕痰勝?氣. 毋踰於柚子. 因此推之. 天之生物. 必有相參而相制. 損之極處. 益之者隨. 害之甚處.利之者存. 是以?貂厚?. ?於慘冽之地. 而得之以禦寒. 椰子檳?. 生於酷熱之方. 而賴之以解暑. 今以??之鄕. 又有此衛生之珍果. 夫豈偶然者哉. 有感於此. 漫又一吟.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이르기를, “유자는 위(胃) 속의 나쁜 기운을 없앤다.” 하였으니, 그 성미(性味)가 훌륭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지방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습담(濕痰)을 제거하고 장기(?氣)를 이기는 데 유자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미루어 보니, 하늘이 물건을 낼 때에 반드시 서로 도와주고 서로 제재하는 것이 있어서, 손(損)이 지극한 곳에는 유익함이 따르고 해(害)가 심한 곳에는 이롭게 하는 것이 있었다. 털이 많은 담비와 털이 푹신푹신한 살쾡이가 매우 추운 지방에서 생산되어 사람들이 이것을 얻어 추위를 막을 수 있고, 야자(椰子)와 빈랑(檳?)이 매우 더운 지방에서 생산되어 사람들이 이것을 힘입어 더위를 풀 수가 있다. 지금 장독(?毒)이 있는 지방에 또 이처럼 건강에 유익한 진귀한 과일이 있으니, 어찌 우연이겠는가. 이에 감동함이 있어서 부질없이 또 한번 읊조린다.
바닷가로 반도 가져오기 어려운데 [蟠桃海外苦來遲]
절로 동산 가운데에 좋은 열매가 있다오 [自有園中好實皮]
치아에 닿으니 깨끗한 샘물로 위를 씻어내는가 놀랍고 [激齒淸泉驚滌胃]
목구멍에 삼키니 향기로운 안개 살 속에 은은히 배어드네 [?喉香霧暗滋肌]
아름다운 이름은 신농의 기록에 실려 있고 [佳名已載神農筆]
신묘한 쓰임은 채약하는 사람에게 들었노라 [妙用今聞採藥師]
장독이 있는 지방에 이 물건 자라게 하였으니 [必使?鄕生此物]
하늘의 어진 마음 이때에 알 수 있네 [天心仍可認玆時]
18. 遯齋詩話云. 凡詠梅多詠白. 而荊公詩獨云鬚撚黃金危欲墮. ?團紅蠟巧能粧. 不惟造語巧麗. 可謂能道人不到處矣. 今柚非但其實可貴. 其樹亦多可稱者. 而爲實所掩. 人無道之者. 漫又效嚬荊公詠梅. 雖文妙不及. 亦不欲但以狀物爲巧也.
《둔재시화(遯齋詩話)》에 이르기를, “무릇 매화를 읊을 때에는 대부분 백색을 읊으나, 형공(荊公)의 시에는 홀로 ‘황금의 수염 흔드니 위태로워 떨어지려 하고, 꼭지에 붉은 납이 맺혔으니 공교하게 단장하였네.〔鬚撚黃金危欲墮 ?團紅蠟巧能粧〕’ 하였는바, 조어(造語)가 교묘하고 화려할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말했다고 이를 만하다.” 하였다. 지금 유자는 그 열매가 소중할 뿐 만 아니라 그 나무 또한 칭찬할 만한 점이 많은데, 열매에 가려서 사람들이 나무에 대해 말하는 자가 없다. 이에 부질없이 또 매화를 읊은 형공을 흉내내니, 비록 문장의 묘함은 그만 못하나 또한 단지 물건을 형용하는 것으로 재주를 삼으려 하지는 않는다.
유자나무 울창하게 숲을 이루어 늦도록 푸르르니 [鬱鬱成林晩色遲]
푸른 구름 잎이 되고 벽동이 껍질이 되었네 [綠雲爲葉碧銅皮]
가시가 많으니 벌레와 새들 오지 못하고 [刺多不許來蟲鳥]
오래 사니 응당 뼈와 살 단련되었으리라 [壽久還應練骨肌]
담박한 꽃은 문이 적은 재상과 같고 [淡素花如文少相]
곧은 가지는 절개 높은 스승에 견줄 수 있네 [堅貞枝比節高師]
더욱 사랑스러운 것은 대나무와 서로 이웃하여 [更憐孤竹相隣近]
일체로 사시사철 푸르른 것이라오 [一體靑靑貫四時]
19. 柚之於橘. 其類一也. 書經孔氏注. 大曰柚. 小曰橘. 本草曰果之美者. 有雲夢之柚. 橘則乃以洞庭稱焉. 豈雲夢洞庭之間. 亦有土宜之別耶. 此地有柚而無橘. 其香色氣味. 雖不得同盤而鬪品. 小固不可以敵大. 旣得其大者. 遺其小亦可也.
유자와 귤은 한 종류이다. 《서경(書經)》의 공씨(孔氏 공안국(孔安國) ) 주(註)에, “큰 것을 유자라 하고 작은 것을 귤이라 한다.” 하였으며, 《본초강목》에, “과일 중에 아름다운 것은 운몽(雲夢)의 유자가 있고, 귤은 바로 동정(洞庭)에서 생산되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하였으니, 아마도 운몽과 동정 사이에도 토질의 차이가 있는가 보다. 이 지역에는 유자만 있고 귤은 없으니, 유자의 향기와 색깔과 기미(氣味)는 비록 귤과 한 소반에 놓고 품질을 다툴 수는 없으나, 작은 것은 진실로 큰 것을 상대할 수 없다. 이미 그 큰 것을 얻었으니 작은 것은 버려도 괜찮을 것이다.
꽃 핌도 더 이르지 않고 익는 것도 더 늦지 않으니 [開花無早熟無遲]
귤에 비하여 오직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라오 [比橘唯分大小皮]
좋은 맛은 본래 운몽의 열매를 칭찬하니 [美味素稱雲夢實]
진귀한 이름 어찌 동정에서 생산되는 귤뿐이랴 [珍名何但洞庭肌]
추 나라 사람이 초 나라 사람과 싸우면 끝내 이기기 어렵고 [鄒人戰楚終難勝]
등 나라가 왕도(王道)를 행하더라도 다만 스승이 될 뿐이라오 [?國行王只作師]
좁은 땅에 오히려 두 늙은이가 들어 있으니 [窄地尙聞容二?]
넓은 집 내 지금에 찾고자 하노라 [廣居吾欲訪今時]
20. 順天許生?冬後來訪. 袖中携贈八柚. 感其自陸入島. 吟以遣意.
순천(順天)의 허생 원(許生?)이 겨울이 지난 뒤에 찾아오면서 유자 여덟 개를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 와서 주니,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온 것에 감사하여 읊어서 고마운 뜻을 보낸다.
승평의 나그네 어째서 늦게 왔는고 [昇平客子到何遲]
소매 속에 여덟 개의 노란 유자 가져왔다오 [袖裏?來八老皮]
어려운 길 건너왔는데도 모양이 아름답고 [路涉艱難猶好面]
추운 절기 당했는데도 오히려 살이 많구나 [節當寒瘦尙?肌]
바다에 들어가 선약을 구하지 않았으니 [曾非入海求僊藥]
어찌 뗏목을 타고 성사를 따르겠는가 [豈是乘?逐聖師]
이곳에도 너와 같은 것 많으나 [此地亦多如汝輩]
유락함을 가엾게 여겨 한동안 어루만지노라 [獨憐流落撫移時]

2026.07.16(목) 17: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