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연월일 : 2026년 07월 16일(목)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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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서울로 출장 갔다가 돌아온 남편이 큰 상자 두 개를 끙끙 들고 들어왔다. '내게 줄 생일선물이라도 사 왔단 말인가?' 나는 잠시 흥분되었다.
"이게 뭐예요?"
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이들도 쪼르르 상자 앞으로 달려갔다. 남편은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띠고 차분히 상자를 풀었다. 조심스럽게 비닐을 벗겨 내니 단단한 스티로폼에 쌓인 물체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는 소형 TV 비슷하게 생겼는데 자세히 보니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컴퓨터라는 거야, 이건 8비트 아이들 게임용이고, 이건 당신 가계부 쓰라고 사 왔어"
하지만 나는 시큰둥했다.
"가계부는 무슨! 내 손으로 쓰는 게 훨씬 빠르고 쉬운데, 귀찮게 저걸 왜 들여왔담! 게다가 타자도 칠 줄 모르는 내가 어쩌라고?"
나는 남편이 사전에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이런 물건을 덜컥 사 온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컴퓨터는 거실 한구석에서 비닐을 뒤집어쓴 채 먼지만 쌓여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무슨 애물단지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선원이었던 남편이 집에 오는 날에야 비로소 비닐이 벗겨지고 전원이 켜지곤 했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는 우리 집에서 가장 낯선 물건이었다. 아이들은 게임을 하겠다며 컴퓨터 앞에 앉았고, 남편은 집에 올 때마다 사용법을 설명해 주었지만, 내 귀에는 외계어처럼 들렸다.
"이건 플로피디스크고, 여기에 저장하는 거야"
남편이 몇 번을 설명하는데도 나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가계부를 쓰라고 마련해 준 16비트 컴퓨터를 켜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한번은 용기를 내어 전원을 살짝 연결하였다. 이해할 수 없는 깨알 같은 영어가 화면 빼곡히 나타났다. 나는 얼른 콘센트를 뽑아버렸다. 컴퓨터라는 그 자체가 두렵기만 했다. 더군다나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 왔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이렇게 우리 가족과 컴퓨터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큰아이는 집에 오면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게임을 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 기기를 만지기도 싫었고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했다. 남편이 서울까지 가서 나를 위해 사다 준 것이란 생각을 하니 살짝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후 몇 년이 흘렀다. 우연히 신문에 '전자계산학과 수강생모집'이라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 기초과정을 가르치는 어느 대학의 교양과정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학교로 차를 몰았다.
"기간은 1년 과정이고요, 주당 2시간입니다."
예상보다 기간이 길어 부담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일단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현실이 마음을 부담스럽게 했다. 저녁 수업이라 아이들을 맡길 만한 데가 없었다. 나는 일찌감치 아이들을 재워놓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수업에 참여했다.
교수님의 강의는 열정적이었지만, 난생처음 들어보는 복잡한 컴퓨터의 세계를 따라가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었다. 그렇다고 옆자리 동료들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어 난감했다. 젊은 동료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다.
동료 중에는 졸음이 밀려와 괴로워했던 방송국 여직원, 진료 업무를 위해 온 의사, 수기에서 전산으로 모든 업무가 전환되면서 단체로 온 공무원들, 통신회사 전문가 등 다양했다. 일반 주부가 컴퓨터를 배우러 온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사회적 역량을 갖춘 그들에 비하면 내 실력은 너무나 빈약했다. 동료들도 곳곳에서 탄식을 내뱉곤 했다.
"기계언어라는 것이 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구먼!"
나는 주간에는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고, 저녁이 되어 수업에 임하다 보니 피로가 몰려와 집중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컴퓨터라는 낯선 세계를 이해하기엔 내가 가진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일 년이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처음 수업을 시작했을 때와 일 년 후의 나를 비교하면 컴퓨터라는 낯선 기계의 세계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건 컴퓨터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해소된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두 번째 연장자였는데, 나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동료들과 돈독하게 지냈다.
"공부에 미쳤구나, 미쳤어!"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집에 오니, 온 집이 아이들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너무 놀라 황급히 뛰어 들어갔다. 뜻밖에 남편이 우는 막내를 안고 있는 게 아닌가! 남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고, 큰애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죄인처럼 큰애를 다독였다. 그날은 오랜만에 남편이 귀국하는 날이었다.
"아이들도 엄마 공부 땜에 고생했는데, 꼭 데리고 오세요."
수료식을 며칠 앞두고 동료들은 우리 아이들을 챙겼다. 남편도 내가 끝까지 완주한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면서 축하해 주었다. 나는 그 수료증이 너무 자랑스럽고 소중했다. 일 년이라는 기간을 과감히 나에게 투자한 것이었기에 언젠가 내게 큰 도움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연세가 있으신데,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이 없네요."
훗날 대학에서 만난 젊은 학생이 내게 말했다. 우리 학과 학생들은 내가 자판을 능숙하게 다룬다고 신기해했다.
사무실에서 전 직원이 퇴근하고 나면 나는 매일 혼자 남아 양손으로 자판을 익히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을 거듭했다. 이런 과정을 수개월 동안 꾸준히 했더니 나의 독수리 타법은 사라졌고, 어느새 젊은이들처럼 익숙하게 자판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컴퓨터가 어떤 물건인지도 모른 채, 맨땅에 헤딩하듯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 컴퓨터는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닌 내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등용문이었다.
그때 익힌 컴퓨터는 훗날 대학에서 과제를 준비하는 든든한 도구가 되었다. 젊은 학생들과 밤늦도록 토론하며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 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이 부분은 언니가 찾아 오세요"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내게 말했다.
사라진 8비트와 16비트 컴퓨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작은 기계 앞에서 떨었던 나는, 그 어떤 새로운 일 앞에서도 먼저 한 걸음 내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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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6(목) 17: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