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정을병문학비 건립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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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09(금) 11:43
[독자기고] 정을병문학비 건립에 거는 기대
2025년 02월 28일(금) 12:06
송홍주
[남해문학회장]
보물섬 남해군은 문학의 고장이다. 남해군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유배문학관이 있고 걸출한 문학가로 이름난 정을병 소설가와 같은 수많은 문인들이 배출되었다.

유배 문인을 대표하는 서포 김만중 선생의 이름을 딴 '김만중 문학상'도 15년째 운영되고 있고,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2022년 제13회 김만중 문학상 대상을 탄 인연이 있는 등 소중한 문학적인 자산을 가진 문학의 섬이다.

이러한 문학의 고장 남해군에 다른 도시에는 그 흔한 문학비나 현대문학관, 문학 공원 또는 복원해 놓은 문인의 생가 하나 오롯이 없어 지역의 문학 애호가를 비롯한 뜻있는 문인들이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그런데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역출신의 명망 있는 소설가 정을병 작가의 문학비를 세우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어 지역 문학인의 한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08년에 작고한 정을병 작가는 경남 남해군 이동면 금평마을(벅시골)에서 출생하여 이동초등학교, 남수중학교, 남해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신학대학을 다니던 중 문학활동을 시작한 온전한 남해출신 문인이다.

생전에 60여편의 엄청난 작품을 집필한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를 이끄는 등 한국 문학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창작활동에서는 실존적인 측면에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고발과 정치색이 짙은 자유의 문제를 주로 작품화하여 대표적인 고발문학의 기수로 알려져 있으며, 수많은 문학상 수상 경력과 문화훈장 포상 등 한국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정을병 작가는 3만여 권의 많은 책을 읽은 다독작가로 68편의 많은 작품을 남겨 문학을 천직으로 여겼다.

이런 문학 활동 와중에도 정을병 작가는 고향 사람, 특히 고향출신 문인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은 누구보다도 강했다고 한다.

고향에서 옮겨온 황매화를 40여 년간 돌봐오는 등 고향 사랑이 남달랐으며, 애향심 강한 문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국자생란보존회 회장을 맡아 많은 자생란을 남해에 심을 정도로 고향사랑이 대단한 분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을병 작가는 32년 전인 1993년 <월간중앙 5월호>에 남해 사람을 폄하하는 듯한 필화 사건으로 남해군민들의 분노를 사고 화형식까지 당한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정을병 작가는 남해군청을 방문하여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이후 30여 년의 오랜 세월 고향 사람들에게 앙금으로 남아 정을병 작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얽힌 매듭을 풀어야 했지만 작가는 이미 고인이 되었고, 그의 직계 가족들이나 집안의 친인척은 흩어져 소식을 끊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이번 문학비 건립 추진에는 고향 사람들과의 화해와 용서라는 밑바탕을 다지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정을병 문학비 건립은 2016년에 처음 뜻있는 문인들에 의해 고향마을에 문학비를 세우려다 좌절되고 결국 40여 년을 살아온 서울 서대문구에 세워졌다. 그 후, 2023년 4월 남해도서관 주최로 <남해의 작가 정을병, 다시 읽다>라는 토론회가 남해유배문학관에서 개최되어 정을병 작가의 문학적 성과를 재조명하면서 정을병 남해 문학비 건립 운동이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정을병문학비 건립추진위원회는 문학비 건립 기금을 모으고 정을병 선생의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과 용서를 구하려 했던 본심을 고향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건립 위치 선정을 위한 주민간담회 등을 갖기도 하고 앙금이 맺혀있는 주민들의 마음이 누그러지길 기다리기도 했다.

전국의 남해출신 문인들을 비롯하여 남해문학회에서도 지역 언론을 통하여 정을병 작가가 남긴 문학적 자산을 소개하는 등 그의 문학적 성과를 재평가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이에 공감한 문학 동호인들과 군민들은 십시일반 건립 기금 모금에 힘을 보태고 문학비 건립 분위기 확산에도 힘을 보탰다.

2024년 12월에 펴낸 『남해문학 제27집』에는 양왕용 교수의 <정을병 작가의 남해 사랑과 고향 기념비 건립의 의의>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였으며, 박소현 수필가의 <한국 고발문학의 대가 정을병>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정을병 작가가 남긴 문학적 발자취를 소개하기도 했다.

정을병문학비 건립추진위원회와 남해 문학인들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숱한 우여곡절 끝에 남해군에서도 문학비 건립을 심사숙고하고 있다.

정을병 작가가 생전에 소원했던 앵강만이 바라보이는 고향마을 인근 언덕에 그의 문학비가 세워져 관광객들이 선생의 업적을 쉽게 알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한다. 비록 일부 고향마을 사람들에게 외면 받았지만 정을병 작가는 남해군의 보물이다.

남해의 문학인들은 한국 문학계에 많은 업적을 남긴 정을병 작가가 고향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김만중 문학상과 함께 그의 문학적 자산이 남해군의 보물로 자리 잡아 남해의 인문학적 자랑이 되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길 고대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남해군에서는 남해의 현대문학 자산을 찾는 사업의 추진을 계획하여 남해 출신 문인들의 문학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어 반갑기도 하다.

문학은 단순한 문화 행사가 아니라 지역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그 지역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담고 있다.

문학은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지역 공동체의 소속감을 높이고, 지역 경제와 문화 발전을 촉진하는 핵심적인 요소로도 작용한다.

문학 활동이 활발한 지역에서는 문학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문화적 자산이 풍부해져 문화콘텐츠의 근원이 다양화되어 관광산업의 저변이 넓어지게 된다. 결국 문학의 활성화는 남해군이 문화관광도시로 한발 더 나아가는 기반이 되고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정을병 문학비 건립은 정을병 작가와 남해군민이 화해함으로써 보물섬 남해군이 스스로 갈등을 해소하고 유배지라는 과거사의 아픔을 치유하여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발걸음을 내딛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가 있다.

또한 문학적인 측면에서 그의 문학적 성과들이 복원되어 남해현대문학관 건립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보물섬 남해군이 인문학의 도시로 거듭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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