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대장군지, 삼별초활동 지리적 범위·전략적 구조 재구성 그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전환점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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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16(금) 11:47
남해대장군지, 삼별초활동 지리적 범위·전략적 구조 재구성 그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전환점 마련

'80척 선단' 기록이 당시 남해 주둔 병력 규모를 추산하는 중요한 단서,
선박운용능력과 병력수용규모 고려하면 남해일대에 3천여 명이 주둔

2026년 01월 16일(금) 10:33
▲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 전경
△ 삼별초 항몽 투쟁의 역사적

의의와 오늘의 함의



삼별초의 항몽 투쟁은 1273년 제주 항파두리성(缸坡頭里城)이 함락되면서 막을 내렸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오늘까지도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고려 조정이 몽골과의 굴복을 선택하는 상황에서도 삼별초는 끝까지 국권 회복과 자주적 국가 체제 수호를 위해 싸웠고, 이는 고려의 자주정신을 대표하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 '대장군지'서 발견된 유물


그들이 강화도, 진도,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가며 40년에 가까운 항전을 이어간 사실은 백절불굴의 민족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역사 장면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삼별초는 해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항전을 전개한 독특한 구국 모델을 제시했다. 최근 '남해 대장군지' 발굴은 삼별초가 단순히 육지의 일부 지역에서만 싸운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해상망을 기반으로 몽골에 맞섰음을 실증적으로 확인해 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이러한 항전 방식은 해양을 활용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한 고려의 전략적 사고를 보여주며, 삼별초 항쟁의 공간적·전략적 범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더 나아가 남해 지역에서 확인된 항몽 유적의 재발견은 지역사와 국가사,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이 결합해 새로운 역사 인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된다. 지역 주민들의 구전 전승과 고고학적 발굴, 문헌 연구가 서로 맞물리면서 그동안 간과되었던 지역의 역사적 위상이 재조명되었고, 이는 앞으로 지역 중심의 역사 연구가 갖는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의미 있는 성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남해 대장군지 발굴은 삼별초 항몽사의 지리적 범위와 전략적 구조를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문헌 기록과 고고학적 자료가 결합되면서 삼별초의 복합적 성격을 보다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유존혁과 남해 삼별초 부대의 활동 또한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다. 이는 삼별초 항쟁이 고려 조정의 방기(放棄)에도 불구하고 몽골에 맞선 자주적인 해상 방어 체제였음을 확인시켜준다. 삼별초가 남해를 중심으로 해상로를 확보하고 해안 거점을 통제하려 했던 노력은 당시 고려가 처했던 지정학적 환경과 항전 전략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단서가 된다.

특히, 진도 용장성과 유사한 건축 양식과 축대 구조를 가진 대장군지의 발견은 남해 거점이 단순히 보급 기지를 넘어 진도 정부의 지휘·통제와 연계된 핵심 군사 요충지였음을 명확히 알려준다. 삼별초가 마지막까지 몽골의 침략에 저항하며 자주적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해상 거점들을 연결하여 통합적인 역사적 조망이 가능해진 것이다. 앞으로는 남해 지역에 대한 추가 발굴과 문헌 비교 연구를 확장하고, 강화도·진도·제주도와 연계한 삼별초 항몽 유적의 보존 및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삼별초가 남긴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의미를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전승하고, 더 나아가 한국 해양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며 지역 역사 문화 자산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계기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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