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미래신문기획 - 남해, 우리 역사와 문화 재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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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 인간의 끈기와 자연이 빚어낸 유산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삶을 일군 민초(民草)들의
끈기와 지혜가 응축된 역사·문화·신앙의 종합 유산이다"

남해미래신문
발행연월일 : 2026년 02월 06일(금) 12:17
▲ 다랭이마을 모내기 모습

남해 다랭이마을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선다. 이곳은 생존을 위한 억척스러운 투쟁이 빚어낸 거대한 예술 작품이자, 500년 넘게 이 땅을 지켜온 민초들의 끈질긴 삶의 연대기이다. 한려수도의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가파른 설흘산 자락에 층층이 펼쳐진 다랭이논은 자연의 척박함에 맞서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일구어내려 했던 선조들의 간절한 염원과 지혜가 석축으로 응축된 인간 승리의 기록이다.
특히 논과 바다, 산이 한 호흡처럼 이어지는 풍경은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질서가 장구한 세월 동안 빚어낸 조화의 결정체로, 다랭이마을의 존재 이유를 더욱 웅변해 주고 있다. 이곳의 풍경은 단순한 경관적 가치에 머물지 않고, 농경 사회가 간직해온 공동체적 삶의 방식과 자연을 바라보는 겸허한 태도를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준다. 이 글에서는 다랭이마을의 역사와 주변 지역의 문화적 가치, 그리고 오늘날의 의미를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남해미래신문은 남해, 잊혀져 가는 우리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 재발견 재발굴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추적,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에 기꺼이 뜻을 모아 그간 함께한 연구를 지면으로 소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전 남해해성고· 전 창선고 최성기 교장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한다. <편집자 주>





△ 108층 계단에 새겨진 생존의 기록, 다랭이논의 경이로움
▲ 다랭이마을 전경

다랭이마을의 경이로움은 그 규모와 형태에서 비롯한다.
약 45°의 급경사를 따라 108층이 넘는 계단식 논이 바다를 향해 쏟아져 내리는 듯한 장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기계는커녕 소 한 마리가 겨우 발을 디딜 수 있을 정도로 좁고 작은 논들이 대부분이어서, 이곳 사람들은 예부터 손으로 땅을 일구고 소로 쟁기질을 해왔다.
'삿갓배미' 전설처럼, 논이 너무 작아 삿갓을 벗어두니 그 밑에 가려 논 한 마지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땅 한 조각의 소중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은 논이라도 돌 하나, 흙 한 줌을 허투루 여길 수 없었던 삶의 조건은 오늘날, 이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었고, 이는 인간의 인내와 절박함이 자연 위에 그려낸 또 다른 역사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층층이 이어진 다랭이논은 단순한 농경지의 형태를 넘어, 척박한 환경에서도 삶을 이어가기 위한 공동체의 지혜와 협력이 한데 쌓인 결과물이다.
오늘날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 풍경 속에는 수백 년 동안 사람과 자연이 부딪히고 타협해 온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또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음에도 어업 대신 마늘과 시금치, 벼농사를 주업으로 삼았고, 특히 해풍의 영향으로 병해충 발생률이 낮아 친환경 농업이 발달한 곳이다.
한겨울에도 따뜻한 기후 덕분에 쑥과 냉이 같은 봄나물이 가장 먼저 고개를 내밀어, 사계절 내내 푸르름과 생명력이 감도는 땅이 되었다. 동시에 계단식 지형은 빗물과 토양을 효율적으로 머금어 농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이는 선조들이 자연을 세심히 관찰하며 터득한 삶의 지혜를 잘 보여준다.
이곳의 다랭이논은 단순히 농토를 넘어, 자연과 인간이 오랜 세월 치열하게 타협하며 만들어낸 지속 가능한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설흘산 봉수대가 지켜낸 삶의 터전, 역사적 조망과 사료 검증
▲ 설흘산 봉수대 모습

다랭이마을의 든든한 버팀목인 설흘산 정상(488m)에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봉수대(烽燧臺)가 오늘날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설흘산 봉수대는 남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의 동향을 감시하고, 그 정보를 금산 봉수대를 비롯해 사천과 전남 일대로 이어지는 봉수망에 신속히 전달하던 중요한 군사 통신 거점이었다.
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이 산이 '소흘산(所訖山)' 또는 '소흘산(所屹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두 문헌 모두 산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음을 명확히 전한다.
특히 조선 후기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는 설흘산 봉수대가 국가 봉수 체계 중 핵심 노선인 제2로 직봉에 속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설흘산이 단순한 경관의 산을 넘어, 남해 일대의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해 중앙으로 전달하는 국가 전략망의 중추적 위치에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봉수대(烽燧臺)가 축조된 자리는 주위를 넓게 관측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展望臺)여서, 이곳에 오르면 발아래로 다랭이논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망망대해를 굽어보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던 선조들의 긴장감과 층층이 논밭을 일구며 생계를 이어갔던 마을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한 프레임 안에 담겨 숭고한 감정을 자아낸다.
나아가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다랭이마을의 풍경은 국가를 지키려는 책임감과 삶을 이어가려는 생존의 노력이 같은 공간에서 중첩되며, 이 산과 마을이 지닌 역사적·정신적 의미를 한층 더 깊게 체감하게 한다.



△ 암수바위, 민초들의 희망과 다산(多産)의 염원
▲ 다랭이마을 암수바위 모습

남해 가천 마을의 기원에 관해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비롯한 공식 자료에서도 구체적인 형성 배경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김해 김씨·함안 조씨 등 토착 가문의 족보와 문중 기록을 통해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추정될 뿐, 마을의 초기 모습이나 형성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고문헌(古文獻)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지역사회가 오랜 세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어 왔음을 방증하며, 남해의 다른 해안 촌락과 유사한 전통적 정주 양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마을이 가천마을에서 '다랭이마을'이라는 공식 명칭을 갖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관련 조례가 공포된 2021년 12월에야 행정적으로 명칭 변경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관광적 가치와 문화유산의 보존 필요성이 커지면서 지역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다랭이마을의 해안 절벽 가까이에 자리한 가천 암수바위(미륵불)는 이 마을의 오랜 민간 신앙과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남성 성기(性器)를 닮은 수바위(길이 5.8m)와 여성 성기를 닮은 암바위(길이 4.2m)가 나란히 서 있는 이 자연석은 마을 사람들에게 풍요 와 다산(多産) 그리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신성한 대상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이곳을 지나던 한 도승이 마을에 기근(飢饉)과 질병(疾病)이 끊이지 않자, 땅속에 묻혀있던 이 바위들을 파내어 세웠다고 한다.
 이 바위에 기도를 올리면 옥동자(玉童子)를 얻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자손 번성을 염원하는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신앙은 척박한 땅에서 생명을 이어가야 했던 민초들이 자연에 기대어 희망을 찾고자 했던 순박하고도 절실한 마음을 반영한다.
 마을에서는 매년 이 바위를 중심으로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미륵제(彌勒祭)를 지내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져왔다.
 다랭이논이 땅과의 투쟁의 산물이라면, 암수바위는 자연과의 조화를 꿈꾼 정신적 안식처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다랭이마을, 자연의 절경과 공동체의 지혜가 만든 기적
▲ 다랭이마을 해안 절경 모습

 다랭이마을로 향하는 남면 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꼽히며, 해안 절벽과 청정 바다가 만들어내는 장대한 풍경을 품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선(海岸線)을 따라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에서는 지나는 곳마다 다랭이마을의 독특한 지형과 남해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다랭이마을이 오늘날 전국적인 명소(名所)로 자리 잡은 이유는 이러한 자연적 아름다움에만 있지 않다.
 주민들은 과거의 고된 삶의 터전을 보존하면서도 농촌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지속 가능한 마을 모델을 구축했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개발, 정감 어린 시골 환대를 담은 숙박·식당 운영, 지역 농산물과 문화를 활용한 콘텐츠 확장은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가천 다랭이마을은 한때 빈촌(貧村)으로 불리던 이미지를 벗고 전국 농촌 체험마을의 벤치마킹 1순위로 떠올랐으며, 지역 공동체 발전의 대표적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의 성과는 주민들의 꾸준한 노력과 세대를 잇는 협력이 만들어낸 값진 결실이다.



△ 공동체의 노력과 계승: 끈기의 유산을 지키다

 
 오늘날 다랭이마을이 이처럼 성공적인 문화·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단순히 주민들의 노력만으로 된 일이 아니었다.마을의 잠재력을 일찍이 발견하고 행정적·정책적으로 힘을 보탠 이들의 숨은 헌신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고(故) 김종철 남해군의원의 노력은 이 마을의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장면이다.
 이 마을 출신인 그는 척박한 땅에서 고립되어 있던 다랭이마을의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이를 국가적 관광 자원으로 키우기 위한 정책적 지원과 홍보 활동에 온 힘을 기울였다. 김 군의원은 마을의 전통과 경관을 온전히 보존하면서도 관광객 유치를 위한 기반 시설 확보, 체험 프로그램 개발, 관련 예산 배정 등을 위해 끊임없이 의회와 행정을 설득했다.
 특히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해치지 않으면서 외부와의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 방향을 제시해, 오늘날의 다랭이마을을 있게 한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기에 다랭이마을은 명승(名勝)으로 지정되고, 매년 수많은 방문객이 찾는 대한민국 대표 명소로 도약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그의 노고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경을 담아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세우고, 그 뜻을 후대에 길이 전하길 바란다.
 영세불망비는 단지 한 개인의 공적(功績)을 기리는 돌비가 아니라, 마을을 위해 헌신한 이의 마음을 영원히 기억하며 그 정신을 이어 마을을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공동체적 약속을 상징하는 귀중한 표식이기 때문이다.
 

△ 살아있는 박물관, 희망의 메시지를 웅변하다
▲ 다랭이마을 논갈이 모습

 결국 남해 다랭이마을은 억척스러운 생존의 의지, 역사적 유산, 민중 신앙, 그리고 선각자의 헌신이 조화롭게 결합된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다랭이논의 곡선을 따라 걷고, 설흘산 봉수대에서 바다를 조망하며, 암수바위에 담긴 간절한 염원을 되새기는 모든 순간, 우리는 이 땅에서 삶을 일구어 온 모든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지역 탐방을 넘어, 자연을 딛고 삶을 개척해 온 우리나라 농촌 문화의 깊은 뿌리를 생생히 체감하게 하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랭이마을은 우리에게 고난을 이겨내는 끈기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유산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유산을 지키고 빛내는 공동체적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해 주고 있다.
 더 나아가, 기후 변화와 인구 감소 등 새로운 시대적 도전에 직면한 오늘, 다랭이마을이 보여주는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과 공동체적 협력 모델은 미래 세대가 참고할 수 있는 귀중한 지침이 된다.
 푸른 바다 위에 새긴 인간의 끈기는 오늘도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면면히 이어지며, 모든 방문객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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