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바다와 벚꽃 그리고 하늘, 그야말로 '천상의 풍경'
이태인 기자
발행연월일 : 2026년 04월 10일(금)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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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22일, 남해의 지도가 바뀌었다. 총 길이 660m, '동양 최초·최대 현수교'라는 수식어와 함께 남해대교가 개통된 날이다. 당시 군민들은 다리가 무너질까 조심스레 발을 내디디면서도 자부심을 느꼈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 차량 통행의 임무를 노량대교에 넘겨준 남해대교가 '문화예술 관광 거점 도보교'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필자는 직접 해발 60m 높이의 주탑 케이블에 몸을 싣고, 1.1km의 아찔한 대장정을 통해 남해대교가 품은 50년의 역사와 미래 가치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본 기사는 남해군이 지난 4월 4일부터 5일까지 개최한 봄 축제 '2026 꽃피는 남해(부제: 남해 가 봄?)'의 핵심 프로그램인 '1973 남해대교 체험(브릿지 클라이밍)'에 직접 참가해 작성한 현장 탐방기이다. <편집자 주>
◇ 봄 폭풍 뚫고 열린 '코발트 빛' 하늘
지난 4월 4일, 축제 시작을 앞둔 남해대교 일대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축제를 시샘이라도 하듯 밤새 몰아친 봄 폭풍은 오전까지도 거센 비바람을 뿌리며 행사장을 뒤흔들었다.
당초 오전 10시로 예정되었던 '브릿지 클라이밍' 체험은 안전상의 이유로 연기되었다.
주최 측과 참가자들의 마음은 타들어 갔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 겸허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전 10시경, 거짓말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비가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매섭게 몰아치는 세찬 바람이 젖어있던 대지를 순식간에 말려버렸다.
비에 씻겨 내려간 하늘은 전례 없이 새파랗고 투명한 코발트색 얼굴을 드러냈다.
하지만 하늘의 평온함과는 달리, 몰아치는 강풍은 오늘 체험이 결코 만만한 나들이가 되지 않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었다.
◇ "혈압 169mmHg 공포인가, 설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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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전 마주한 관문은 안전 서약서 작성과 혈압 측정이었다.
평소 건강을 자부해왔건만, 측정 결과는 무려 169였다.
안원의 걱정 어린 시선에 필자는 웃으며 속으로 답했다. "이건 병이 아니라, 50년 넘게 우러러만 보던 거대한 주탑을 직접 밟는다는 생각에 심장이 먼저 반응한 것입니다."라고. 사실 브릿지 클라이밍의 전체적인 난이도는 높지 않았다.
암벽 등반 기술이나 초인적인 체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발아래 펼쳐진 허공을 마주할 '한 뼘의 용기'뿐이었다.
묵직한 하네스(안전벨트)를 조이고 턱끈이 단단한 헬멧을 쓰자 몸도 마음도 무거워졌지만, 그 무게감은 곧 안전에 대한 신뢰로 바뀌었다.
필자는 양손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 목걸이 거치형 스마트폰 카메라를 고정하고, 60미터 상공의 실황을 실시간으로 전하기 위한 채비를 마쳤다.
◇ 1.1km의 대장정
체험 프로그램은 두 가지 코스로 나뉜다. 남해 방향의 주탑을 왕복하는 '단거리 코스'가 맛보기라면, 필자가 도전한 '장거리 코스'는 남해대교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마스터 코스다.
남해군 위치의 주탑을 지나 하동군에 위치한 주탑까지 케이블을 타고 이동하며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다.
이 코스의 거리는 왕복 약 1.1km로, 성인 기준으로 보통 40~50분 정도가 소요된다. 단순히 높이 올라가는 것을 넘어, 현수교의 가장 낮은 지점에서 가장 높은 지점까지 다리의 전신을 온몸으로 느끼는 대장정이다.
하동군 쪽 주탑으로 향할수록 바람은 더욱 사나워졌고, 발아래 흐르는 노량 바다의 유속은 마치 거대한 강물처럼 소용돌이치며 시각을 자극했다.
50분간의 사투는 체력보다도 '허공 위의 고독'과 '몰아치는 자연'을 견디는 정신력의 싸움이었다.
◇ 콧물과 눈물이 앞을 가리는 60m 상공의 사투
케이블 작업로에 발을 내디뎠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세이프티 트롤리가 안전 와이어를 따라 나를 이끈다. 발아래는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는 스틸 그레이팅 구조였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수십 미터 아래 푸른 바다가 출렁이며 뇌리에 짜릿한 전기 신호를 보냈다.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지만, 주탑으로 올라갈수록 바람은 더욱 사나워졌다.
해발 60m 높이에서 정면으로 맞닥뜨린 세찬 바람은 콧물과 눈물을 쉴 새 없이 자아냈다. 마침내 정상에 섰을 때 마주한 파노라마 뷰는 모든 보상을 대신했다.
거북선이 떠 있는 노량 바다와 벚꽃이 흩날리는 남해의 전경은 그야말로 '천상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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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 아찔한 20미터의 구간
이번 체험의 백미이자 가장 큰 고비는 주탑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20m여 구간이었다.
평탄했던 작업로와 달리 이 구간은 경사가 급격히 가팔라지며 좁은 계단식 구조로 변모한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시야는 오직 주탑의 꼭대기만을 향하게 된다.
이 지점은 고소공포를 가장 강하게 느끼는 구간이기도 하다.
주탑 끝에 도달했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극대화되지만, 일반 체험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는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특히 이 가파른 마지막 구간에 안전망이 확충된다면 훨씬 더 많은 군민과 관광객이 안심하고 이 전율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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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 관광 체험 위한 제언 : '안전·재미·스토리텔링'
남해대교 브릿지 클라이밍이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시드니 하버 브릿지처럼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가 재미'라는 철저한 원칙 아래 발전 전략을 수립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주탑 상부의 가파른 구간에 대한 영구적인 안전 시설 확충이 필요해 보인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재미는 지속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단순한 신체적 도전을 넘어 남해대교만이 가진 역사적 서사를 입히는 스토리텔링 작업이 병행되었으면 좋겠다.
50분간의 긴 횡단 시간 동안 체험자가 무선 헤드셋을 통해 1973년 건설 당시의 에피소드나 노량해전의 장엄한 역사를 가이드의 음성으로 듣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등반을 넘어 남해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인문학적 여행으로 승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도보교 전환 이후에는 다리 상판과 주탑을 연결하는 복합 문화 콘텐츠를 유기적으로 배치했으면 한다.
버스킹과 플리마켓은 물론, 주탑 정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화된 포토 서비스와 기념 리워드를 제공함으로써 남해대교만의 독창적인 브랜드 가치를 구축했으면 좋겠다. 특히 야간 경관 조명과 연계한 '나이트 클라이밍' 프로그램은 전 세계 모험가들의 오감을 자극하며 남해를 사계절 관광지로 변모시킬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5월과 9월, 다시 열릴 전율의 기회
왕복 1.1km의 여정을 마치고 땅을 밟았을 때,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가슴은 뜨거웠다.
이번 기회를 놓친 분들을 위해 반가운 소식이 있다.
남해군에 따르면 다가오는 5월과 9월에도 이 체험 프로그램이 추가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남해대교는 이제 늙고 지친 다리가 아니다. 누구나 소통하고, 예술을 즐기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가장 역동적인 문화 공간으로 비상하고 있다.
1973년, 우리 남해인들이 품었던 풍요의 꿈이 2026년, 우리의 발걸음을 통해 글로벌 관광 남해의 꿈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남해대교의 찬란한 비상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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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금) 16: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