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자(삼동) 부산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발행연월일 : 2026년 07월 10일(금)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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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앉거라, 앉아!"
여객선에서 삼판으로 옮겨 탄 사람들은 노련한 사공의 말 한마디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사람을 잔뜩 실은 작은 배는 파도에 흔들릴 때마다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고, 정원 초과에도 아랑곳없이 노를 젓는 사공의 눈빛에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나는 삼동면 물건리 은점마을에서 중학교 3년 내내 여객선으로 통학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버스나 대중교통이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두 시간 남짓 걸렸지만 배를 타면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우리 동네는 바다를 끼고 있어서 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당시에는 부두가 조성되지 않아 삼판을 이용해 여객선을 타고 내려야 했다.
하루 두 번, 나는 그 흔들리는 배 위에서 학교를 오갔다. 사공은 승객을 위해 원시적인 방법으로 노를 저었고, 그 대가로 약간의 운임을 받았다.
지금은 생소한 '삼판'은 바다와 사람 사이를 이어주던 평평하고 묵직한 나룻배였다.
"오늘 폭풍주의보가 내려 배가 못 뜬다고 하네요."
바닷가에서 초조하게 여객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사공이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하얀 이빨을 드러낸 파도가 불길한 예감을 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하나둘 자리를 떴다. 바닷가는 금세 텅 비었고, 파도만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삼판은 외형부터 여느 어선들과는 달랐다. 목선의 높이는 약간 낮은 편이고, 폭은 아주 넓고 평평해서 듬직한 느낌이 들었다. 선두에서 선미까지 이어지는 옆선을 따라 육중한 타이어가 덧붙여져 있어 웬만한 외부 충격에도 끄떡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삼판을 '군함'이라고 불렀다. 묵직한 무게감과 안전감이 있었지만, 그만큼 노를 젓는 일은 힘들었다. 힘차게 노를 젓는 사공의 입에서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덩치 큰 남학생들은 그를 도와 함께 노를 저었다. 나는 동력으로 쌩쌩 달리는 배 보다, 삐걱거리며 삐뚤삐뚤 나아가는 삼판을 타면 기분이 좋고 안락한 느낌이 들었다.
"삼판 올리러 갑시다!"
폭풍우가 치는 날, 그 외침이 떨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움직였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사람들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어른의 진두지휘에 따라 몇 개의 조로 나눠 줄을 당겼다.
삼판은 마을의 생명줄이자 모두가 지켜야 할 소중한 삶의 통로였다. 몇몇은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밧줄은 팽팽하게 당겨지며 끼익 소리를 냈다. 큰 파도가 때릴 때마다 배가 옆으로 뒤집힐 듯 기우뚱거렸다. 허리까지 차오른 바닷물은 장정들을 때려눕힐 듯한 기세였다. 삼판이 파도에 휩쓸릴 듯한 순간마다 '영~차~'하고 구령을 외치며 배를 뭍으로 끌어올렸다.
"아지매, 왠 돼지요?"
"키워서 장에 내다 팔려고 사왔지예."
한쪽 구석에서 꿀꿀거리는 돼지 새끼를 꼭 끌어안고 있는 아주머니를 향해 한 젊은이가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삼천포 장날이면, 삼판 위는 짐과 사람들로 가득 찼다. 다른 한편에서는 어장종업원들에게 보낼 쌀자루 포대가 높게 쌓여있었다.
동네 구멍가게 주인은 술이며 과자, 생필품들을 잔뜩 실은 체 행여나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앉아있었다. 삼판 위에는 시장 물가가 어떻다느니, 누구를 만났다느니 하는 이야기들로 늘 소란스러웠다.
날이 맑고 바람이 없는 날이면,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그런 날 나는 삼판의 옆에 걸터앉아 우뚝 솟아있는 뒷산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 풍광을 감상하곤 했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바닷가였다.
"야가 얼굴에 노란 꽃이 피었네, 우짜노?"
나는 통학한 내내 뱃멀미에 시달렸다. 몸이 약했던 탓에 파도가 높고 배가 많이 흔들리는 날이면 불과 한 시간 남짓 항해하는 그 시간이 지옥처럼 느껴지곤 했다. 간신히 몸을 가눈 체 삼판에 내리면 안도는커녕 그 위로 덮칠 듯 밀려오는 파도가 두려워 육지에 닿을 때까지 눈을 질끈 감고 버텼다. 안전 장비 하나 없이 위험한 삼판을 타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는 육지에 발을 디디면 아직도 파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갓 멀미를 심하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기도 여러 번 했다.
"삼판에 학생들이 꽉 찼더라!"
바닷가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배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모두 검은색 교복을 입은 덕분에 삼판은 마치 검은 그림자처럼 바다 위를 떠다녔다. 여름이 되면 삼판은 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면 마치 하얀 요트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방학이 되면 삼판도 사공도 모두 외로워 보였다.
"아이고, 이 보소, 나 좀 태워 가 주소!"
삼판을 놓친 사람이 소리쳤다. 손님들의 불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절한 사공은 유유히 뱃머리를 돌렸다. 앞바다에는 부산으로 가는 대형 여객선이 '뿌우, 뿌우' 뱃고동을 울리면서 사공을 재촉하고 있었다.
"좀 일찍 나올 것이제, 뭐하다 이제사 오노?"
바닷가에서 이 광경은 본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씩 하였다.
일주일에 두 번 부산으로 오가는 여객선이 오는 날이면, 주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바닷가로 모였다. 이웃 마을 사람들도 이 광경을 보려는 듯 삼삼오오 걸어왔다.
해변은 가족과 친지를 환송하러 온 사람들도 함께 섞여 있어 평소 한산했던 것과 달리 활기를 띠었다. 그 속에 있는 나도 설레었다.
"삼판이 안 보이네요"
내가 오랜만에 친정에 갔을 때,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삼판이 보이지 않아 어머니께 물었다.
"객선이 전라도 어디로 팔려 가믄서 삼판도 따라 갔다 아이가"
"아스팔트가 깔리고 부산 가는 버스가 생기니 손님이 확 줄었제"
나는 갑자기 마음 한쪽이 텅 비는 듯했고, 바닷길이 통째로 사라진 느낌이었다. 삼판을 타고 오갔던 모든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그날은 종일 바닷가를 서성거렸다.
여객선에서 삼판으로 옮겨 탄 사람들은 노련한 사공의 말 한마디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사람을 잔뜩 실은 작은 배는 파도에 흔들릴 때마다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고, 정원 초과에도 아랑곳없이 노를 젓는 사공의 눈빛에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나는 삼동면 물건리 은점마을에서 중학교 3년 내내 여객선으로 통학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버스나 대중교통이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두 시간 남짓 걸렸지만 배를 타면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우리 동네는 바다를 끼고 있어서 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당시에는 부두가 조성되지 않아 삼판을 이용해 여객선을 타고 내려야 했다.
하루 두 번, 나는 그 흔들리는 배 위에서 학교를 오갔다. 사공은 승객을 위해 원시적인 방법으로 노를 저었고, 그 대가로 약간의 운임을 받았다.
지금은 생소한 '삼판'은 바다와 사람 사이를 이어주던 평평하고 묵직한 나룻배였다.
"오늘 폭풍주의보가 내려 배가 못 뜬다고 하네요."
바닷가에서 초조하게 여객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사공이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하얀 이빨을 드러낸 파도가 불길한 예감을 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하나둘 자리를 떴다. 바닷가는 금세 텅 비었고, 파도만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삼판은 외형부터 여느 어선들과는 달랐다. 목선의 높이는 약간 낮은 편이고, 폭은 아주 넓고 평평해서 듬직한 느낌이 들었다. 선두에서 선미까지 이어지는 옆선을 따라 육중한 타이어가 덧붙여져 있어 웬만한 외부 충격에도 끄떡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삼판을 '군함'이라고 불렀다. 묵직한 무게감과 안전감이 있었지만, 그만큼 노를 젓는 일은 힘들었다. 힘차게 노를 젓는 사공의 입에서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덩치 큰 남학생들은 그를 도와 함께 노를 저었다. 나는 동력으로 쌩쌩 달리는 배 보다, 삐걱거리며 삐뚤삐뚤 나아가는 삼판을 타면 기분이 좋고 안락한 느낌이 들었다.
"삼판 올리러 갑시다!"
폭풍우가 치는 날, 그 외침이 떨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움직였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사람들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어른의 진두지휘에 따라 몇 개의 조로 나눠 줄을 당겼다.
삼판은 마을의 생명줄이자 모두가 지켜야 할 소중한 삶의 통로였다. 몇몇은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밧줄은 팽팽하게 당겨지며 끼익 소리를 냈다. 큰 파도가 때릴 때마다 배가 옆으로 뒤집힐 듯 기우뚱거렸다. 허리까지 차오른 바닷물은 장정들을 때려눕힐 듯한 기세였다. 삼판이 파도에 휩쓸릴 듯한 순간마다 '영~차~'하고 구령을 외치며 배를 뭍으로 끌어올렸다.
"아지매, 왠 돼지요?"
"키워서 장에 내다 팔려고 사왔지예."
한쪽 구석에서 꿀꿀거리는 돼지 새끼를 꼭 끌어안고 있는 아주머니를 향해 한 젊은이가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삼천포 장날이면, 삼판 위는 짐과 사람들로 가득 찼다. 다른 한편에서는 어장종업원들에게 보낼 쌀자루 포대가 높게 쌓여있었다.
동네 구멍가게 주인은 술이며 과자, 생필품들을 잔뜩 실은 체 행여나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앉아있었다. 삼판 위에는 시장 물가가 어떻다느니, 누구를 만났다느니 하는 이야기들로 늘 소란스러웠다.
날이 맑고 바람이 없는 날이면,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그런 날 나는 삼판의 옆에 걸터앉아 우뚝 솟아있는 뒷산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 풍광을 감상하곤 했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바닷가였다.
"야가 얼굴에 노란 꽃이 피었네, 우짜노?"
나는 통학한 내내 뱃멀미에 시달렸다. 몸이 약했던 탓에 파도가 높고 배가 많이 흔들리는 날이면 불과 한 시간 남짓 항해하는 그 시간이 지옥처럼 느껴지곤 했다. 간신히 몸을 가눈 체 삼판에 내리면 안도는커녕 그 위로 덮칠 듯 밀려오는 파도가 두려워 육지에 닿을 때까지 눈을 질끈 감고 버텼다. 안전 장비 하나 없이 위험한 삼판을 타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는 육지에 발을 디디면 아직도 파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갓 멀미를 심하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기도 여러 번 했다.
"삼판에 학생들이 꽉 찼더라!"
바닷가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배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모두 검은색 교복을 입은 덕분에 삼판은 마치 검은 그림자처럼 바다 위를 떠다녔다. 여름이 되면 삼판은 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면 마치 하얀 요트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방학이 되면 삼판도 사공도 모두 외로워 보였다.
"아이고, 이 보소, 나 좀 태워 가 주소!"
삼판을 놓친 사람이 소리쳤다. 손님들의 불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절한 사공은 유유히 뱃머리를 돌렸다. 앞바다에는 부산으로 가는 대형 여객선이 '뿌우, 뿌우' 뱃고동을 울리면서 사공을 재촉하고 있었다.
"좀 일찍 나올 것이제, 뭐하다 이제사 오노?"
바닷가에서 이 광경은 본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씩 하였다.
일주일에 두 번 부산으로 오가는 여객선이 오는 날이면, 주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바닷가로 모였다. 이웃 마을 사람들도 이 광경을 보려는 듯 삼삼오오 걸어왔다.
해변은 가족과 친지를 환송하러 온 사람들도 함께 섞여 있어 평소 한산했던 것과 달리 활기를 띠었다. 그 속에 있는 나도 설레었다.
"삼판이 안 보이네요"
내가 오랜만에 친정에 갔을 때,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삼판이 보이지 않아 어머니께 물었다.
"객선이 전라도 어디로 팔려 가믄서 삼판도 따라 갔다 아이가"
"아스팔트가 깔리고 부산 가는 버스가 생기니 손님이 확 줄었제"
나는 갑자기 마음 한쪽이 텅 비는 듯했고, 바닷길이 통째로 사라진 느낌이었다. 삼판을 타고 오갔던 모든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그날은 종일 바닷가를 서성거렸다.

2026.07.10(금) 01: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