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자의 영화이야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00만 관객돌파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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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8(수) 22:29
[조기자의 영화이야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00만 관객돌파 기념

"일본 후세대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감독이 전하고 싶은 말

조승현 jsh49@nhmirae.com
2023년 11월 03일(금) 11:55
*주의: 본문은 영화 감상에 방해될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보물섬시네마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관람하고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저는 감독 본인이나 영화 평론가가 아니기때문에 본문의 내용은 정답이 아니며,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과 추측으로 이뤄져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개봉 일주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과 세계는 감독 자신의 생애과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거울처럼 옮겨놓았기에 이 사실을 잘 모른 채로 관람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어렸을 때부터 지브리의 영화를 보며 자라왔고, 모든 작품과 감독의 생애까지 일부러 찾아본 제가 영화에서 중요한 키워드들을 되짚어 보며 개인적인 감상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주인공 '마히토'

주인공 '마히토'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입니다. 실제로 감독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1937년 소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영화는 마치 자신이 다시 어렸을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를 자신이 상상한 세계를 통해서 보여준 것 같았습니다.



■처제와 결혼한 전쟁부역자 아버지

작중 주인공은 아버지의 언행을 대놓고 불편해합니다. 특히 아버지가 처제와 재혼하는 것은 만약 감독의 어머니가 일찍 죽었다면, 어머니를 잊지 못해 빼다 박은 사람과 재혼할 정도로 사랑하지만 그녀가 처제라도 결혼할, 상식 밖인 최악의 아버지로 묘사한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감독은 군수공장에 다닌 전쟁부역자로, 전쟁 특수로 돈을 번 아버지를 싫어했습니다.



■'탑'과 '이세계'

1854년, 메이지유신 직전에 외부 세계에서 날아온 돌로 세워진 탑 내부의 세계에는 마법같이 새로운 세상이 탄생됐습니다. 서양 열강과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룬 일제처럼 말이죠.

주인공이 들어간 탑 내부의 첫 모습은 마치 저승과도 같은 '죽음의 바다'입니다. '제국주의'의 시작을 알린 '동인도회사'가 앞다퉈 식민지를 세우는 데 사용한 서양의 '갤리온' 선박들은 마치 세상의 끝인 연옥을 향해 항해하는 그림입니다.

이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민인 '앵무새'들은 인간의 말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까지도 따라 하는 생명체가 돼버렸습니다. 우매한 민중을 상징하는 것 같은 이 앵무새들은 식인까지 하는 최악의 행동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심지어 나치 독일의 날개 문장과 이탈리아 파시스트 무솔리니를 연호하는 피켓을 들고 있습니다. 실제 일본 역시 이들과 같이 추축국에 가담했죠.

제가 생각한 '탑'의 이 세계는 일본의 지난 역사를 저승과 동일하게 여긴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본의 부끄러운 역사는 저승과 마찬가지고, 그 일제시대 일본인들은 실제로 식인같은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으니까요.

감독이 이렇게 대놓고 일본의 역사를 빼닮은 가상의 세계를 다루고, 비판하는 내용을 넣은 이유는 감독이 반전주의자가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데, 바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라는 자신의 나라를 정말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여행 중 만난 4명의 '친구'

마히토는 탑 내부 여행을 통해 4명의 인물 왜가리, 키리코, 히미, 큰할아버지를 만납니다. 실제로 모두 감독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혼란한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게 안내해 주는 '왜가리'는 절친한 친구인 지브리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준 '키리코'는 지브리의 창립 멤버이자 색채 감독 '미치요 야스다', △무조건 주인공을 지지해 주는 '히미'는 감독 자신의 어머니, △주인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큰할아버지'는 5년 전 타계한 자신의 멘토이자 동료였던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입니다.



■악의가 담기지 않은 13개의 '돌'

주인공은 초반 악의가 담긴 '돌'로 자해합니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아버지가 더러운 일을 처리해 주길 바라면서. 그러나 그 '돌'로 인해 흉터는 영원히 남게 되고, 새엄마는 그 상처에 죄책감을 느낀 채 실종돼 버립니다. 주인공은 죽은 어머니가 남긴 책을 읽고 나서야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행동을 취합니다. 그리고 모험 끝에 가서 자신의 큰할아버지에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백합니다.

"이 상처는 내가 만든 것이다. 바깥세상에서도 친구를 만들고, 악의가 담기지 않은 돌을 찾겠다."

'이는 후세대가 자신의 과오를 당당히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일본 전·현세대의 어리석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길' 바라는 감독의 바람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세계에서 큰할아버지가 찾은 악의가 담기지 않은 돌은 총 13개로, 이번 영화까지 포함해서 감독이 만든 지브리 영화의 개수인 13편과 일치합니다.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지금까지 친구들과 함께한 걸어온 길이자 마히토(혹은 일본 후세대)가 앞으로 걸어갈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정말 좋았습니다.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나를 낳지만, 곧 죽는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갈 것이냐"고 묻고, 주인공의 어머니는 "죽게 되더라도 너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야"라고 말합니다.

위 대사를 통해서 감독은 만약 저승에 가서 자신이 기억하는 젊은 시절의 어머니와 만나게 된다면 서로가 서로를 아끼던 좋은 어머니와 좋은 아들로, 잘 살아왔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조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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