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살 사람도 없어 재산가치 하락, 노후 병원비 '걱정'

  • 즐겨찾기 추가
  • 2026.06.29(월) 15:29
농지 살 사람도 없어 재산가치 하락, 노후 병원비 '걱정'

농가, 투기꾼 잡으려다 농민 잡는 '기형적 농지법'에 '분통'
1996년 농지법 개정에 따른 군단위 지자체 '위탁 영농 체계' 붕괴
정부, '경자유전(농민만 땅을 가질 수 있다)'의 원칙을 공고히 하겠다
농가 본인들의 텃밭 농사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한계 상황
"농지 이제 팔 수도 없고 재산가치만 폭락, 노후 병원비·생활비는"

홍성진 선임기자
발행연월일 : 2026년 06월 29일(월) 14:35
남해군의 농촌 벌판이 깊은 절망의 한숨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난 2021년 수도권에서 발생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토지 투기 사태 이후, 정부가 빼 든 고강도 농지 전수조사와 규제 강화의 칼날이 엉뚱하게도 남해군 등 군단위 지자체의 영세 고령 농민들과 향우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인공지능(AI), 고성능 드론, 위성까지 동원해 실경작 여부를 현미경처럼 색출하고 일부 처분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43%를 넘어선 남해군 등 인구소멸지역의 비극적인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는 현장의 절규가 쏟아지고 있다.



1996년 농지법 개정의 굴레와' 위탁 영농 체계'의 전면 붕괴


우리나라 농지 행정의 대전환점은 1996년 1월 시행된 통합 농지법이다.
당시 정부는 '경자유전(농민만 땅을 가질 수 있다)'의 원칙을 공고히 하겠다며 농지를 살 때 '농지취득자격증명(농취증)'과 '농지이용계획서'제출을 의무화했다.
이때부터 외지인이나 도시로 떠난 향우들이 고향 땅을 증여받거나 취득할 때 '향후 자경(직접 농사)' 약속이 강제되었다.
문제는 세월이 흐르며 고향을 떠난 향우들이나 주말농장을 기대했던 외지인들이 실제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들은 전체 농사를 지을 여력이 못돼 고향의 이장이나 친인척들에게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일부 농지 관리를 의탁(위탁 영농)하며 농지의 원형을 보존해 왔다.
그러나 현재 남해군 등 인구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지자체마다 남은 어르신들조차 초고령화되어 본인들의 텃밭 농사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돈을 주고 맡기려 해도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농가와 향우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스스로 경작할 기력마저 상실한 노인들에게 정부가 전수조사를 들이대며 가혹한 이행강제금과 처분 명령을 내리는 것은, 평생 흙을 일궈온 노인들을 졸지에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아 나라 곳간만 채우겠다는 잘못된 정책아니냐는 비판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모 지역 땅 9회 유찰 참사… 군민 자산(재산)가치 하락


외지인의 취득 문턱이 극단적으로 높아지자, 법원 경매 시장에서 드러난 남해군의 토지 지표는 충격을 넘어 공포 그 자체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군내 모 지역의 2,650평 규모 농지는 남해군 자산 가치 붕괴의 현실을 고스란히 웅변한다.
당초 감정가 4억 원대를 호가하던 이 농지는 겹겹이 쌓인 취득 규제 탓에 매수자가 전무했다. 결국 최초가의 단 10% 수준인 4,000만 원대까지 가격이 추락하며 9회 유찰이라는 초유의 참사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농촌의 실수요가 완전히 소멸했다는 증거다.
고령 농민들에게 농지 가치의 대폭락은 곧 유일한 노후 생명줄인 '농지연금' 수령액의 급감으로 이어져 생존권마저 위협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재산가치 하락현실 모르는 법 개정에 노후 막막"


이러한 연쇄 폭락의 피해는 고스란히 남해 지역 농가들에게 고통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농지를 가진 농민들만 아무런 잘못도 없이 가만히 앉은 채로 개인 재산 가치가 조정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셈이다. 특히 평생 농지에 의존해 자식들을 키워내고, 이제는 늙고 병들어 농지를 처분해 노후 병원비와 생활비로 쓰려던 고령 농민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이다.
남해군의 한 고령 농가는 "농사지을 인구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시골 현실에서 '경자유전'이라는 법을 시대 흐름에 맞지 않게 억지로 들이대니 마지막 재산줄이던 농지마저 가치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외지인에게 땅을 팔아야 노후 생활을 유지하고 병원비라도 보탤 텐데…, 이웃들도 이제 다 늙어서 땅을 사지 못하는 실정인데 외지인 말고 어디에 농지를 팔라는 이야기 인지, 정부는 귀농·귀촌 정책이 많다고 자랑하지만, 실제 시골로 와서 농사짓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현장 실태나 제대로 알고나 떠드는지 원망스럽다. 현실을 모르는 국가 정책에 그저 가슴을 치며 한숨만 쉴 뿐이다"고 토로했다.


▲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숫자로 본 귀농·귀촌의 환상과 현실 '농사짓는 사람(귀농)'은 단 2%...
나머지는 단순 이주 '10가구 중 3가구는 다시 도시로

 
 이 같은 농민의 지적은 통계로도 고스란히 증명된다. 실제 매년 정부가 발표하는 귀농·귀촌 인구 중 농촌에 내려와 실제 농사를 짓는 순수 '귀농인'은 고작 2~3%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 97%는 주거지만 옮긴 단순 '귀촌'으로, 농촌의 핵심 문제인 영농 인구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 그나마 내려온 귀농인조차 10가구 중 3가구는 소득 부족과 규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역귀농'을 선택하는 것이 잔인한 현실이다.
 정부의 화려한 홍보 수치와 달리, 실제 남해의 전답을 사서 농사를 지어줄 '진짜 실수요자'는 농촌 유입 인구 중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실 없는 셈이다.
 정부는 매년 수만 가구가 농촌으로 향한다며 귀농·귀촌 활성화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다. 그러나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의 세부 지표를 뜯어보면 현실과 괴리되어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매년 발표되는 귀농·귀촌 인구 중 통계상 농업에 직접 종사하는 순수 '귀농인'의 비율은 전체의 2~3% 남짓에 불과하다. 나머지 97% 이상은 도시 인근이나 고속도로가 인접한 읍·면 지역으로 주거지만 옮긴 '귀촌인'이다. 즉, 남해군처럼 외진 농촌 벌판에서 실제로 허리를 굽혀 흙을 일구고 고령 농민들의 땅을 사줄 '실수요 영농 인구'의 유입은 정부 발표와 달리 사실상 전멸에 가깝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 후 정착에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는 '역귀농·귀촌율'이 약 20~30%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가장 큰 실패 원인으로는 '영농 소득 부족(40% 이상)'이 꼽힌다.
 기형적인 농지법 규제로 인해 진입 장벽만 높아진 상태에서, 내려온 청년·은퇴농들조차 소득을 올리지 못해 3년 동 안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싸는 구조다.
 그나마 유입되는 순수 귀농인 중에서도 50대와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70%를 상회한다. 도시에서 은퇴한 고령층이 다시 시골의 고령층으로 편입되는 구조다 보니, 이들이 수천 평에 달하는 기존 농지를 매입해 대규모로 전업농을 이어갈 체력적·경제적 여력은 전무한 실정이다.



공인중개사업·건설·레미콘사업까지 실물경제 전반 '도미노 마비' 우려
 

 이 같은 기형적 규제는 농민 개인을 넘어 지역 경제 전반을 고사시키는 도미노 재앙으로 번지고 있다. 공인중개사협회 남해군지회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안 그래도 얼어붙었던 전답 거래가 정부의 현미경 전수조사 조치 이후 아예 중단됐다. 중개업소들은 숨만 쉬고 있을 뿐 생계가 막막한 상태다"고 말했다. 건설 및 기초자재 업계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외지인이 농지나 임야를 사서 펜션, 전원주택을 지으려던 발길이 완전히 끊기면서 지역 건설 경기도 파산 직전이다. 남해의 경우 대형 국책 사업인 '쏠비치 남해' 공사 마무리 이후 관급 공사마저 뜸한 상황에서 민간 건축마저 전멸했다. 관내의 한 레미콘 회사 관계자는 "작은 주택이나 펜션을 짓는 공사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현재 공장 가동률이 예년 대비 20% 수준에 불과하다"며 사실상 사업을 접어야 할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사회관계망(SNS)과 지역 커뮤니티에 나타난 민심 역시 들끓고 있다.
 향우들과 은퇴 후 귀촌을 꿈꾸던 대도시 직장인들은 "고향 땅을 지키고 싶어도 법이 범죄자로 만드니 땅을 지금 당장 팔아야 할 판"이라며 "시골 땅은 투기 대상이 아니라 소멸을 막아야 할 대상인데 정부가 거꾸로 가고 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구소멸지역 맞춤형 '농지법 개정'제도 개선 외치는 목소리 거세
 

 전문가들은 대만과 일본의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 국가 역시 심각한 농촌 고령화를 겪었으나, 이미 오래전 '경자유전'의 낡은 틀을 폐기하고 자본의 유입과 규제 철폐를 통해 농촌의 전환을 이뤄냈다.
 지방 재정 자립도가 낮은 남해군의 특성상, 실거래가 폭락에 따른 공시지가 하향 조정은 결국 재산세 등 지방세수 마비로 이어져 노인 복지와 인프라 예산 삭감이라는 최악의 부메랑이 될 자명하다.
 이제 남해군의 행정 당국과 지역 정치권은 실효성 없는 면피성 대책 뒤에 숨지 말고 '사즉생'의 결단으로 나서야 한다.
 노령화가 극심한 인구소멸위기 지역에 한해서만이라도 1996년 농지법의 빗장을 풀고, 농지 취득 및 위탁 영농 규제를 전면 완화하는 '맞춤형 특례법' 제정을 중앙정부에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남해군도 황폐화된 '무인촌'이라는 끔찍한 미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기기사 TOP 5
남해
자치행정
경제
스포츠